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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빌리 Dec 17. 2023

쌓이지 않는 기록들

주간 일기(2023. 12월 셋째 주)

기록이 쌓이면 뭐든 된다.

언제 바뀐 건진 몰라도 네이버 블로그의 메인에 이런 문구가 뜨고 있다. 내가 딱 저런 마음으로 일상을 스케치하여 블로그에 기록해 둬야지, 브런치를 시작해야지, 했던 것인데 사실 블로그는 오래전에 접었고 브런치도 여행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있을 뿐 일상에 대해서는 멈춘 지 오래되었다.


여름에 브런치북을 발행한 이후로 이상하게 읽고 쓰는 일 자체가 아예 나와는 관계없는 일처럼 여겨져(사실 그렇긴 하지만...) 책을 읽는 일도, 일기를 쓰는 일도, 이웃 작가님들의 글을 보는 일도, 내 일상을 기록하는 일도 모두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되지 않았다. 마치 어떤 과제처럼 느껴졌기에 '에잇, 하고 싶을 때 해야지. 하기 싫으면 그만하는 거지.(실제로 10년 전에 블로그에 이것저것 2년쯤 기록하다가 그만둔 적이 있다)' 싶어 진짜로 거의 관두고 있었다.


브런치의 모든 알람들을 진작에 꺼뒀기에 가끔씩 접속하여 여행에 관한 것들만 기록하던 중이었는데, 오랜만에 블로그(블로그는 브런치보다 훨씬 일상적이고 소소하며, 사실 내 취향은 그런 쪽이다)에 접속해서 이웃들의 새 글을 이것저것 살펴보니 나도 다시 일상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노트에 새해 계획들을 적다가 내년엔 꼭 브런치의 글들도 마무리하고 일상에 대해서도 새롭게 기록해 나가야지 다짐했다. 그런 뜻에서 지난 한 주의 순간들을 스케치하여 주간일기를 써본다.


가을부터 아들과 문화센터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데 생각보다 자주 빠지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수업이라 2주 정도 빠지게 되면 다시 제자리가 되는 것이다. '솔'이 어디였더라? '라' 자리가 여기가 맞나? 한참이나 헤매게 된다. 여전히 자세는 엉망이라 선생님은 항상 "힘 빼세요", "팔이 이 선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세요.", " 솔은 미리 준비!!"를 외치신다. 도대체 언제쯤 어깨와 팔에 힘이 빠지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번주엔 처음으로 '나비야'를 연주했다. 드디어 내가 연주하는 악기에서 멜로디라는 것이 흘러나와 기분이 좋았다. 몹시 어설퍼서 연주하는 나만 그게 나비야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지만 그럼 어때, 뭐.

내년에는 열심히 해야지. 하다 보면 언젠가는 여인의 향기 ost를 연주할 수 있겠지?!    


보라카이에 다녀온 지 2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그곳에 빠져 있는 중이다. 땡큐보라카이 카페에 자주 접속하여 오늘의 보라카이 날씨와 호핑 후기를 보곤 한다.

나도 딱 저렇게 놀고 있는 니모를 마주했는데... 2주 전에 쟤네들이 내 손가락 사이를 지나쳤는데... 하며 그 순간을 떠올린다.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쌓이는 만큼 내 삶이 풍성해지는 거겠지?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금요일 퇴근길엔 비가 내렸고 차가 꽤 막혔다. 그리고 차사고가 났다.

그동안의 사고는 나 혼자 벽을 향해 돌진하거나, 주차장 기둥을 찍는다거나, 연석을 타고 올라가 타이어 펑크를 낸다거나 하는 식이었는데 이번엔 접촉사고였다. 도로 위의 최약체 베이지색 모닝답게 갑자기 끼어드는 차를 만났는데 미처 피하지 못하여 조수석 뒤부터 부딪혀버렸다.

마침 사무실 회식이 있어 회식장소로 가던 길이었기에 회식에 조금 늦어버렸다.

지각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사고 이야기를 했더니 "이번 기회에 벤츠로 바꾸세요. 벤츠였다면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요."라고 한다. 당연히 웃자고 하는 소리들. ".... 그건 나도 알지만, 돈이 없어서.... 하하하하 ^^;;;" 나도 웃었다. 벤츠를 몰았다면 정말로 이런 일이 없었을까. 어쩌면 그럴 것 같기도 하다. 참내. 도로 위는 역시 치사한 곳이란 말이지.


우리 집 앞 무인카페.

오랜만에 갔더니 새로운 메뉴로 차가 몇 종류 생겨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며 살펴보다가 선택한 것은 역시나 익숙하고 잘 아는 맛인 라떼였지만, 다음에는 꼭 저 차를 마셔야지 생각했다.

 

사이다샵이라는 쇼핑몰을 알게 되었다. 글로벌 스파브랜드인데 수영복 사이즈가 아주 다양했다. 우리나라 쇼핑몰의 수영복들은 사이즈의 범위가 좁아서(ㅠㅠ) 사놓고도 입지 못하거나 반품한 것들이 꽤 되었다. 이걸 왜 지금 알게 되었을까. 무지 안타까워하며 살펴보다가 세일 중인 상품 몇 가지를 골라 주문했다. 88 사이즈는 좀 크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 사이즈만 남아 있었다. 끈으로 조절이 가능하니, 게다가 왕창 세일 중이니, 일단 사보자 싶어 주문했다.

여행 다녀온 지가 언젠데 또 수영복을... 하며 남편이 놀랄 것이 뻔하니 남편 몰래 택배를 수령하는 것이 다음 주 나의 최대 미션이다. 혹시나 들켜버려 "왜 또 비키니를... 이게 들어가?" 하고 물어온다면 "괜찮아, 88 사이즈야."라고 말해 줄 수 있으니 그건 다행이다. 그나저나, 또 놀러 가자, 남편아.


내년부터 다시 부지런히 기록해야지, 다짐하며 브런치 이곳저곳을 살피는데 조회수가 좀 이상했다. 또 어딘가에 공개되었구나 싶어 찾아보니 저기에 올라가 있었다. 종종 이런 식으로 다음에 걸리곤 했는데 처음엔 내 글이 좋아서 그런가 했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고 지나고 보니 이런 식의 공개가 글쓰기엔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딱히 감흥은 없다. 다만, 저렇게 될 줄 알았다면 나도 '내돈내산, 땡큐보라카이 최고'라고 한마디 쓸 걸 그랬네, 싶긴 하다.

주말엔 한의원에 갔다. 검색해 보니 집 바로 근처에 교통사고에 특화된 한의원이 있었다.

어제부터 목이랑 어깨가 뻐근했는데 오늘은 허리까지 뻐근하길래 증상을 말하며 차 사고 때문인지 주중에 쌓인 피로 때문인지는 모르겠다고 하니 이런저런 침들을 몸에 놓으며 교통사고 환자의 매뉴얼대로 치료해 줬다.

침은 좀 아팠고 배 위에 올려주는 팩은 따뜻해서 좋았다.

차 수리를 해야 하구나,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역시 언젠가는 벤츠를 타야 하나, 그건 언제쯤 탈 수 있을까, 생각하니 그저 솔솔 잠이 왔다.

요즘 보는 드라마. 챙겨본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방송을 하고 있으면 멈추고 본다.

머릿속에 맴도는 가장 간단한 단어를 골라 서로에게 말을 건네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말은'이었나?)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정우성이 이런 내용의 독백을 했었는데 그 대사가 너무 좋았다. 조금 지루한 면도 있지만 그런 잔잔함이 좋아서 계속 보고 있는 중이다.

눈빛이 녹아든 공기만으로 전해지는 마음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의외로 아주 많은 감각을 지니고 있어서 마음의 소리가 전달되는 방법 또한 다양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했다. 그리고 내 기억 속의 정우성은 여전히 비트의 정우성이라서... 나이 든 모습이 조금 낯설었지만 역시나 정우성은 정우성이었다.(그렇지만, 감독님!! 우리 오빠(눼에?) 측면을 좀 더 많이 찍어주세요. 헤헷)


다음 주는 읽다만 책들을 읽을 생각이다. 요가도 다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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