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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빌리 Dec 07. 2022

어떤 찰나에 대한 끄덕임


지난 토요일 저녁에 남편과 우쿨렐레 공연을 갔었다.

아, 정확히는 아들도 같이 갔는데 아들은 중간에 이탈하여 밖에서 핸드폰 게임을 했고 남편과 나만 공연장에 앉아 있었다. 우쿨렐레 공연이었지만 중간에 잠시 했던 바이올린 연주가 정말 멋졌다.

우쿨렐레 소리가 귀엽다며 장난스럽게 웃기만 하던 남편도 바이올린 연주를 듣더니 감탄한 표정으로 우와, 하고 있었다.

남편과 이런 곳에 앉아 조용히 속삭이며 공연을 본 적이 언제였더라.

꽤 오래된 일 같아 기억을 더듬고 있으려니 우쿨렐레를 연주하던 아이들이 초를 들고 나왔다. 공연장은 아주 작은 곳이었고 살짝 떨리던 아이들의 호흡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곧 아이들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불렀는데 그 작고 투명한 소리들이 울리기 시작하던 순간 뭔가 울컥! 치밀어 올라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아주 예전에 느꼈던 어떤 감정들이 지금의 나를 천천히 스치고 있었다.

"아, 나 지금...... 좀 울컥했어."

남편한테 작게 속삭였더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옛날 학예회 느낌이야,라고 했다. 엄청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리운 감정들이라 그 작고 서툰 소리들이 너무 예뻤다.


어떤 추억 같은 게 생각났다기 보단 그냥 아직은 내가 많이 어린 아이였을 때.

새우깡이 50원인가 100인가 하던 시절의 작고 소박해서 평화로웠던 시절의 이야기 같은 거.

세발자전거를 타고 누비던 골목에서 났던 밥 냄새처럼 잊혀진 기억이 지닌 따스함 같은 거.

동네 애들한테 한대 맞고 집에 들어가면 고작 다섯 살 정도였나?어린 여동생이 씩씩거리며 뛰쳐나가 우리 언니 때린 사람 누구냐고 소리치던 그 시절처럼 아련하고 소중한 비밀 같은 거.

그런 게 떠오르면서 괜히 눈물 날 것 같았다.


내가 잊어버린 시절의 기억들이나 풍경들이 내 안 깊숙한 곳에 남아 있다가 지금 이 공간에서 울리고 있는 작은 소리들과 만나 토닥토닥 나를 건드리며 스쳐갔던 그 찰나. 나 지금 울컥했어,라고 했던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여줬던 남편의 공감이 고마웠다.   


요즘 들어 부쩍 잦아진 남편의 끄덕임이 일상을 유지하는 힘이 되고 있다. 살짝 행복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함께 한 세월이 쌓이고 있는 만큼 서로의 감정이 흔들리던 순간과 울림의 파장을 목도한 시간들도 켜켜이 쌓이고 있어 아주 사소한 찰나도 이해받았던 어느 주말 오후. 나는 좀 많이 따뜻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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