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어느 단락단락마다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고 싶은 때가 있는 것 같다. 인생을 논하기엔 여전히 많이 미숙하지만 확실히 적은 나이도 아니기에 슬쩍 뒤를 돌아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꽤 많은 종이비행기를 접었구나.
가끔 그 비행기에 담긴 이야기들을 꺼내어 펼쳐보고 싶을 때가 있다. 어릴 때처럼 저 먼 하늘로 비행기를 날리며 뒤꽁무니를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아마도 지금이 그런 때인가 보다.
내가 할 줄 알고 즐길 줄 아는 것이 쓰고 읽는 것뿐이라, 그 비행기 속에 담긴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작년 가을부터 하고 있는데 첫 문장에서 여전히 막히고 있다. 쓰다가 지우고 쓰다가 지우길 반복하는 동안 계절이 몇 번 바뀌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의기소침해지고 말아 내가 하는 짓들이 조금 쓸모없게 여겨지기도 했다. 이러느니 마켓컬리 후기나 쓰자. 그런 다짐을 그 시기에 했던 것 같다. 아! 느닷없이 마켓컬리를 끄집어내는 이유는, 마켓컬리에서 상품을 구입 후 사진을 포함한 후기를 쓰면 100원을 주는데 내가 쓰는 글자 한 톨 한 톨에 가장 큰 가치를 매겨주는 것이 바로 그 후기였기 때문이다. 글쓰기라는 행위에서 약간의 현실적인 쓸모를 발견했달까.
한 문장도 제대로 못 쓸 거면 차라리 그냥 마켓컬리 후기나 쓰자. 약간 자조적인 다짐이었는데 의외로 꽤나 꼬박꼬박 쓰고 있어 드디어 만 원이 넘었다. 만 원이 넘기까진 '이야 조금만 더 쓰면 만 원이다' 싶어 파이팅이 넘쳤는데 막상 만 원이 넘고 보니(이 글을 썼던 날 기준으로 13000원이 넘었다) 이상하게 조금 씁쓸하다. 그러니까 마켓컬리 후기를 100개나 넘게 쓸 동안 내 종이비행기에 담긴 이야기는 한 문장도 쓰지 못했다는 소리다.
쓰는 이유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한다. 쓰고 싶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다 이런 일에 너무 진지한 내 모습이 조금 가소로워서(내가 뭐 작가라도 되나? 싶은 부끄러움이랄까) 마음을 두었던 상대가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음을 확인이라도 한 듯 조금 토라지고 만다. 아마도 그 기분으로 마켓컬리 후기를 열심히 썼던 것 같은데 내가 쓰고 싶은 건 확실히 다른 것임을 적립금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느낀다. 아, 또 뭐 이런 걸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인생의 진리와 깨달음을 얻은 척하고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마켓컬리 적립금을 확인하고 있으려니 불쑥 그런 생각들이 든다.
철수가 나한테 관심이 없길래 살짝 토라져선 영철이한테 관심 있는 척했더니 똥멍청이 영철이가 칠렐레 팔렐레 하는 거 같고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다시 잘생긴 철수 옆모습이 그리워졌달까.
에라, 모르겠다. 저 적립금으로 나의 최애 상하목장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고 행복한 뚠뚠이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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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4월 즈음에 혼자 투덜투덜거렸었다. 마켓컬리 후기 쓰는 일에 한참 열을 올리던 때였다.
사진이 없는 50원짜리 후기와 사진을 포함한 100원짜리 후기 등 200개가 넘는 후기를 작성했으며 23,000원가량의 적립금이 모였을 때 탈탈탈 털어 상하목장 아이스크림을 사는 데에 보탰다. 그리곤, 일주일 내내 아이스크림을 퍼먹다가 냉방병을 닮은 감기 혹은 감기를 닮은 냉방병으로 며칠 앓았다.
저금통을 털 듯 적립금을 털어 아이스크림을 사고 나니 이상하게도 마켓컬리 후기를 그만 쓰고 싶어졌다. 대신 우유맛 진한 아이스크림을 입 안 가득 밀어 넣곤 내가 내내 상상해 왔던 장면을 문장으로 떠올렸다. 좋아하는 단어들을 꺼내어 이리저리 순서를 바꿔보다가 어떤 문장 하나를 떠오른 대로 써놓고 두 번째 문장과 세 번째 문장을 썼다. 그러다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 단어 몇 개를 지우곤 새로 쓰기도 했다. 계속 지우고 수정하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어쨌든 한 줄 한 줄 어린애 걸음마 하듯 쓰기 시작한 것이다. 토해내듯 그저 뱉어내고 있어 두서가 없고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다. 과잉된 감정들은 그저 조잡하기만 한데 그럼에도 오랫동안 간직해 온 어떤 이미지들이 문장이 되는 걸 보니 살짝 벅차오른다. 아니, 다 떠나서 마켓컬리 후기가 아닌 문장 몇 개를 손에 쥐고 있으려니 내 글쓰기의 자그마한 쓸모는 사라졌지만 역시 잘생긴 철수가 최고였구나,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