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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빌리 Jul 24. 2024

너무나 많은 여름이

#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아마도 나는, 여름을 좀 좋아하나 보다.

'여름이었다'라는 말에 담긴 느슨한 그리움과 오후 7시 즈음의 오렌지 빛 햇살을 머금은 계절이라, 아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마음 한 귀퉁이를 살짝 여름에게 내어주고 있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여름이 다가오는 봄부터 마음이 들뜨기 시작하여 드디어 여름이면 무언가를 쓰고 싶어지는 걸 보니 확실히 여름을 좋아하는 것이 맞나 보다.


# 너무나 많은 여름이

이 책은 작년에 읽었던 책이다. 책장에  읽지 않은 책이 너무 많아서 저 책들을 다 읽기 전엔 새 책을 사지 않겠노라 결심한 직후였기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더랬다. 사실 그 작가의 소설은 대부분 잘 이해하지 못 하는데 매번 그 특유의 감성에 끌려 읽고 만다. 작년에 이 책을 읽을 때 이상하게 설레었고 어딘가 아픈 듯 뭉근하게 들떴기에 올해 결국 이 책을 사고 말았다.

책 표지가 바뀌었나 본데 작년 것이 더 맘에 든다. 어차피 살 것을 그냥 작년에 살 것을 그랬나 보다. 작년의 초록빛 표지는 한없이 청량하여 여름의 시작 같았는데 올해의 표지는 오후 햇살이 담겨 있어 여름의 끝자락 같다. 책 표지가 온통 '여름이었다'를 말하고 있는 거 같아서 조금 애틋하다. 역시, 그냥 작년에 샀어야 했다.


# 내게도 너무나 많은 여름이 있는 것 같다. 한참 동안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지난여름에 다 했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불쑥불쑥 마음이 들뜨곤 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사무실에선 인사이동이 있었고 새로 발령 받은 직원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다. 겸직허가 결재를 하면서 내가 쓰다 말았던 글들을 떠올렸다. , 나도 한동안은 무언가를 쓰는 사람이었구나. 잠시 멍한 기분으로 멈춰 있었다.


# 그 직원이 쓴 소설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그 소설을 읽고 있으려니 나는 그만 여름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어져 잠시 내가 무언가를 쓰던 때는 아마도 여름이어서...라는 말만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에 썼던 여름이었다는 글을 뒤져 보았고 당시의 내 맘을 알 듯 말 듯하여 조금 울고 싶어졌다. 여전히 이맘때마다 반복되는 일렁임의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으니 무언가를 계속 쓰고 싶다가도 다시는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밀려든다. 아주 그리운 사람을 만난 듯 안심되고 반가우면서도 그냥 마음 한편에 묻어둬야 했나 싶은 두려움도 함께 느껴진다.


# 매년 새로운 여름이 시작되고 있다. 작년의 나는 여름의 끝자락에 서서 겹겹의 여름들 위로 어떤 시간을 쌓아 올리며 사실 그땐 여름이었다고 말할 때 너무 아프지 않도록 남은 여름을 성실하게 잘 채워야겠다,라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올해의 나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어떤 다짐을 하게 될까. 그 겹겹의 여름들 사이에 담긴 이야기들이 무언지 알 수 있을까. 미처 이어가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올여름엔 이어갈 수 있을까. 그리하여 너무나 많은 여름들 사이로 꼬깃꼬깃 접어 넣을 수 있는 순간들이 있을까. 어찌 되었든 두려움보단 기대감이 여러모로 나을 테니 몸속 깊은 곳으로 들숨을 밀어 넣으며 여름 속으로 잠겨본다.


# 지난 겨울부터 수영에 빠져 있는 중이라 나는 이제 헤엄을 제법 잘 치며 물살 타는 법을 조금씩 깨우치고 있다. 어쩌면 올여름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표지가 더 맘에 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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