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쓸 땐 주로 식탁에서 쓴다. 결혼하고 4년 동안 식탁이 없었다. 조금 더 큰집으로 이사 왔을 때 비로소 식탁을 가질 수 있었는데 거의 내 방이 생긴 것 마냥 기뻤다. 진짜 내 방이 생기기 전까진 아마도 이 식탁이 내 최애 장소이지 않을까 싶다.
일기도 여기서 쓰고, 마켓컬리 후기도 여기서 쓰고(후기 1개당 100원이다. 내가 쓰는 글 중에 가장 현실적 가치가 있다) 브런치 글도 여기서 쓴다. 물론 늘 여기서 쓰는 건 아니고 침대에 누워서 쓸 때도 있고, 옷방에 요가매트를 깔아놓고 드러누워 쓰기도 하고, 화장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쓸 때도 있다. 뭔가 떠오르면 바로바로 대충 쓰는 편? 거의 의식에 흐름에 따라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렇게 쓰곤 하다 보니 글이 너무 두서없고 가벼우며 때론 순간적인 감정에 지나치게 기우는 건가 싶기도 하다.(일단 장소 탓) 그 습관을 좀 고쳐보려고 최근엔 꼭 이 식탁에 앉아 쓰려한다. 근데 솔직히 그게 그거다. 어디서 쓰든, 쓰는 사람은 나라서, 매번 비슷하다.
작년 가을에 '내 글 구려병'이 엄청 세게 왔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건 모두 마켓컬리 때문인 거 같기도 한데... 암튼 쫌 그랬다. (시무룩)
아니, 이걸 써서 뭐 하려고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여가며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을까. 차라리 그 시간에 마켓컬리 후기라도 쓰면 100원인데 그건 생각나면 가끔 쓰면서, 스스로가 만족하지도 못하는 걸 이렇게나 붙들고 있는 이유가 뭘까.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걸 누가 알기라도 한다면 그 사람하고는 무조건 연을 끊을 거라 다짐할 정도로 이곳에 써놓은 글들이나 여기서 드러내고 있는 내 모습을 창피해하면서 완전히 놓지도 못한다. 참내, 어이가 없네. 그렇게 수치스러우면 안 하면 되는 건데 왜 저러지? 내가, 나 자신이 아닌 척, 팔짱을 터억하니 끼고선 한발 떨어져 바라본다. 남의 일인 듯 시큰둥하게 살펴보며 저러언,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 이러니저러니해도 일기 한 줄이라도 계속 쓰는 삶을 이어가야 하지 않겠냐며, 불쑥 깨달음을 얻은 듯 느닷없이 의욕에 가득 차 그런 다짐들을 하고 만다. 생각해 보니 내 글이 구린 것은 당연하다. 아니 좀 구리면 어때? 싶기도 하다. 나는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니고 그저 쓰는 걸 재밌어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딱 그 정도 마음가짐으로 내가 좋을 만큼만 쓰면 되는 거 아닌가?
사실, 이건 조금 비겁한 물러섬일 수도 있다. 결국은 어떻게 해도 제대로 쓰질 못 하니까 아, 그럼 딱 이 정도만 쓸까? 사실 난 이 정도만 써도 괜찮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 테니까. 아니, 근데, 뭐, 좀 그러면 어때? 나 좋자고 쓰는 거지, 번번이 스스로의 구림을 깨달으며 머리통을 퍼억퍼억 쳐대기 위해 쓰고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그렇게 마음먹으니 손가락 움직이는 일이 한결 편해졌다.
나 따위가 무슨 소설을 쓰겠다고...라는 생각에 머뭇거리기만 했는데, 나 따위라서 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한 문장씩 한 문장씩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나 따위. 상당히 기특. 토닥토닥.
만들었던 매거진 중에서 아직 끝내지 못한 이야기들. 보라카이 여행기나 아들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는 얼른 마무리를 해야겠고, 결국 끝내지 못할 것이 뻔한 이야기들. 직장과 관련된 이야기 등은 어차피 허구에 기대어야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싶어서 그냥 삭제하기로 마음먹었다. 주간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지금처럼 너무 두서없이 쓰진 말고 주간 맥주 혹은 주간 배민, 주간 컬리, 주간 운동, 주간 씨발비용(어머!). 이런 식으로 주제를 정해서 써보자는 생각도 든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 사로잡혀 있을 땐 아무것도 쓰지 못하겠구나 했는데 이제야 다시 쓰는 일이 즐거워져서 조금 신나는 요즘이다. 이 기세를 몰아 이제 마켓컬리 후기를 쓰러 가야겠다. 적립금은 넘나 중요하단 말이지. 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