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장기라서

by 날아라빌리
유성우는 찍지 못했지만 오리온자리는 찍었다

아무래도 유성우 때문이었던 것 같다.


12월 어느 주말에 유성우가 내렸다. '겨울밤 화려한 우주쇼'라고 기사까지 났던데 그걸 미리 알고 날짜를 챙겨 하늘을 본 건 아니었고, 누군가의 송별회를 위해 휴양림을 찾았다가 밖에서 "와아~별똥별이다"라고 환호하길래 후다닥 뛰어나갔던 것이다.

어디 어디, 하며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별똥별 하나가 머리 위로 지나쳐갔다.

"우~~~~~와~~~~~아~~~~~~"

고개가 뒤로 넘어가면서 하늘이 끝도 없이 열렸다. 눈앞 가득 별천지였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나는 별빛의 흐름과 우주의 서사에 환장하는 스스로에게 몹시 취하곤 한다. 가끔은 별빛에 젖어 근거 없이 성급한 낙관에 빠지기도 한다.

옆에서 같이 별똥별을 보던 사람은 내가 아주 아끼던 사람들이었다. (사람 만나기를 꺼려한다 하여 아끼는 지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 공황 장애인데,라고 털어놓았을 때도 평소와 다름없이 맛집 이야기를 이어 나가다가 아무 일도 아닌 듯 그래서 지금 어떤데요?, 라며 아주 무심하게(그러나 실은 굉장히 계산된 타이밍과 배려 속에서) 물었던 그 동료들이었기에 그들과 함께 별똥별을 본다는 사실이 매우 벅찼다. 게다가, 그중 한 명이 해가 바뀌자마자 유학을 떠나기에 당분간은 이렇게 만날 수가 없었다.

야야, 빨리 소원 빌자.

2년 후엔 우리가 어떻게 되어 있을까.

모두 손을 모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 저기 또 지나갔다.

윽, 못 봤는데.

난 봤지요~ 오예, 3개째닷. 하나만 더 봐야지. 소원 딱 하나만 더 빌고 들어가야겠다.

캄캄한 밤하늘 아래에서 오들오들 떨면서도 고개를 치켜든 채 시선을 내리지 못했다.


나는 4개의 별똥별을 보았다. 사실 5개를 본 것도 같은데 너무 순식간에 지나쳐버려 4개까지만 확실했다. 별똥별을 볼 때마다 소원을 빌었다.

약을 끊게 해 주세요.

주변 모두 무탈하게 해 주세요.

빚이 줄어들게 해 주세요.

소설을 끝까지 쓸 수 있게 해 주세요.


남극 얼음이 더는 녹지 않게 해 주세요. 이것도 빌고 싶었는데 너무 추워서 4개까지만 보고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근데 아마도 내가 본 별똥별이 5개 인 듯 하니, 별똥별의 효력이 닿는다면 남극 얼음도 더 이상은 녹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별똥별이었다.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이렇게나 많이 한꺼번에.

내가 우주 서사의 정점에 서 있는 듯했다. 우와, 우와. 별이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별이지. 과하게 들뜨며 취하기 시작했다. 영화 주인공들이 이야기의 막바지에 어떠한 계기로 각성하여 악당을 물리치는 것처럼, 혹은 이강달의 장정왕후가 15년이나 기억을 잃고 정신을 놓고 살다가 아들이 "어머니 쫌! 제에발!"이라고 울부짖자마자 정신을 차리며 "운아..." 하고 아들을 알아보며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나는,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별빛의 흐름에 동요되어 내가 각성한 줄 안 것이다. (아, 이건 절대 자조가 아니다. 그냥, 나는 좀 가끔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어리석은 낭만에 젖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소원부터 빠르게 실천했다. 의사 선생님께 찾아가서 암오케~암오케~를 몇 번이나 외치며 약을 줄여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곤, 지난여름의 그 패턴을 반복하고 말았다.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아 분노의 발화점이 한없이 낮아진다. 성능이 떨어진 배터리처럼 급격히 줄어들며 닳아가다가 결국 내게 가장 취약한 부분에서 터져 버린다. 밖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분했다. 언제나 이 감정은 정확하게 분함과 억울함이다.

약을 먹기 전 두어 달 동안 내내 이런 상태였다. 평일동안 닳아버린 나는 주말이면 아무런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아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고 조그만 일에도 과하게 반응하거나 울거나 화를 내었는데, 약을 줄이자마자 또 그때처럼 돼버리고 만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어머니를 만나서, 밖에 나가, 밥을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필이면 가장 사람이 많은 시기에 밖에 있어야 하고, 하필이면 너무도 외로운 사람인 어머니를 만나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그걸 왜 해야 할까. 왜 지금 나한테 그런 걸 시키지? 남편이 나에게 강요한 적은 없지만 '그래야만 하나'를 고민하게 만든 것, 사교적 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그 어떤 가식과 가면도 쓸 수 없는 나에게 이런 고민을 던진 것, 그 자체에 대한 분노가 점점 증폭되었다. 이러한 감정이 점점 차오르다가 결국 그때처럼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내가 아직 약을 줄일 때가 아닌데 서둘러서 이런 걸까. 아니면 나는 그저 공황장애와 약을 핑계 삼아 화를 내고 있는 걸까. 때마침 약을 줄였으니 화를 내도 괜찮은 타이밍이라는, 말도 안 되는 방패를 앞세워 평소에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과하게 표현하고 있는 걸까. 근데, 그거라면 이건 그냥 나쁜 년인 거잖아. 그냥 못된 똘아이인 건데.

아, 모르겠고요, 됐고요... 이것저것 고민하는 것도 너무 고단했다. 그냥 그때처럼 질질 끌지 말고 빨리 병원이나 가기로 했다. 그저, 별빛이 아직 나에게 닿지 못했나 보구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약을 줄인 지 딱 4일 만에 병원에 가서 약을 늘려달라고 하자 선생님께선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그럴 정도로 줄이지 않았는데,라고 하셨다.

"그럼, 제 심리상태가 문제일까요?"

"그건 뭐 항상 문제였고요."

선생님도 제법 실망하셨는지 은근한 팩폭을 날리시더니 결국 약을 다시 늘려주셨다.

줄일 때도, 다시 늘일 때도, 매사에 호들갑인 듯하여 부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별빛이 닿지 않은 탓이다. 별빛이 내게 닿는 순간, 나는 틀림없이 다시 태어날 것이다. 쫘라라라~ 하며 별빛이 내리는 소리가 들릴 때, 나는 분명히 다시 태어날 것이다.


주말 동안 집에 뻗어있는데 카톡이 왔다. 별똥별을 같이 보았고, 약을 줄이기로 다짐한 나를 지켜보았으며, 결국 감정 조절이 안된다며 하소연하던 나를 걱정하던 동료들의 메시지였다.

새끼손톱 반만큼도 안 되는 신경안정제에 이렇게나 커다란 나의 몸과 마음이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어서 스스로를 조금 하찮게 여기던 중이었다. 괜찮냐고 묻길래 괜찮지만 안 괜찮다고 하니, 마음도 장기라며 내장과 같은 몸의 기관으로 생각하자고 했다.


마음도 장기라는 말은 굉장히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그러네, 그럴 수도 있겠네. 고개를 끄덕이다가,

토끼와 거북이에서 토끼가 육지의 안전한 곳에 간을 걸어뒀다가 필요할 때 꺼내 썼던 것처럼 마음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아니지, 토끼도 그건 거짓말이었잖아, 하며 조금 실망하다가,

어쨌든 깊은 산속 옹달샘을 찾아가 마음 하나를 꺼내어 깨끗하게 씻은 후 빛이 잘 드는 곳에 걸어 말려두고 쓸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순간에 내 마음을 써야 할 때, '앗! 내가 지금 쩌~~기에 마음을 걸어두고 와서 쓸 수가 없는데 이를 어째? 하하핫!' 이럴 수만 있다면 나는 바깥이 조금쯤은 편할 수 있을까.

마음이 장기긴 한데, 또 진짜 장기는 아니니까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약간은 나른해진 몸과 마음을 하고선 별빛을 기다리며 다음 이야기를 생각했다.


사실, 나는 이쯤에서 이 지루한 이야기를 끝내고 싶었다. 기승전결의 구조가 가장 무난하니 그렇게 글을 써보고 싶었다.

기- 어느 날 갑자기 호흡이 곤란해졌다.

승- 무난한 일상들이었는데 왜 이러지? 호흡이 곤란한 이유를 알기 위해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꺼낸다.

전- 일기장에조차 쓰지 않았던 이야기를 써 나가며 울고 웃다가 조금씩 편안해지는 마음을 느낀다.

결- 우연히 별똥별을 보았고, 운 좋게 소원까지 빌었으니 약을 줄이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 이렇게 계획대로 되었다면 꽤 좋긴 했겠지?


글을 처음 시작할 때 제목을 '안녕한 호흡'으로 정하면서 결말이 뭐든 마지막 글의 제목은 ‘안녕할 수 있을까'로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여전히 그 '안녕'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이전의 내가 안녕하지 못 한 나였나? 생각해 보면 아주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지금의 나를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고 괜찮은데 그게 약의 도움이라 하여 안녕하지 못한 건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아니, 다 떠나서 안녕이 대체 무어란 말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안녕의 의미를 여전히 알지 못해서 결국 마지막 글의 제목을 ‘안녕할 수 있을까'로 하지 못 했다. 제목뿐 아니라 결말 또한 내 계획과는 달라졌다.

그러나, 내가 여전히 안녕을 알지 못하며 아직도 약을 먹고 있다 하여, 그동안 써왔던 글과 지난 반년의 시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의 시간 속에 유의미한 책갈피를 몇 개 끼워둔 듯하여 앞으로의 시간들이 그럭저럭 자신 있다.


길리에서 동쪽과 서쪽을 가로지르는 길을 달리던 순간

우붓에서 요가원으로 향하던 순간

가능한 만큼의 호흡을 감각하며 익히던 순간

천마총 앞에서 나를 가만히 기다려주던 남편의 '그러려니'와 괜찮냐고 묻던 목소리

그리고, 모두 함께 손을 모으고 별똥별을 보던 순간

너무 닳고 닳아 조절기능이 마비될 때, 잔뜩 화가 나서 숨이 막힐 때, 언제의 나로 돌아가야 하는 건지 조금 막막할 때. 너무 멀리 돌아보며 오래 더듬지 말고 그냥 딱 저 순간의 나를 떠올릴 수 있도록 책갈피 몇 개를 끼워두었다. 어쨌든 나는 대체로 안녕했으며, 안녕하지 못하다가도 금세 안녕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자주 안녕할 테니, 종종 책갈피를 더듬어 그 순간을 펼치며 나의 안녕을 들여다보면 멋지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별빛이 나에게 닿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별빛이다.



+ 저렇게 내게 꼭 맞는 말을 해주며 나를 위로해 주던 동생이 이제 곧 유학을 떠난다. 공부가 끝날 때까진 돌아오지 못할 테고 비행기가 비싼 동네로 떠나기에 내가 가지도 못할 테니 아마도 우린 2년 동안은 만나지 못할 것이다. 가지마라고 울다가 다시 으른스럽게 잘 가라고 했다.그 친구들과 별똥별을 함께 보며 빌었던 각자의 소원 중 하나 정도는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 연재 요일 같은 건 끝내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기분에 따라 쓰고 읽는 나랑은 참으로 맞지 않는 방식이구나, 느꼈다.


+ 지극히 사적이며, 그리하여 더욱 지루했을 이 이야기를 함께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스스로의 이야기에 몰두하던 중이라 찾아주시는 만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보잘것없는 작은 이곳에서 걸음 해주셨는데 보답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부디 내내 건강! 하시고, 안녕!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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