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의 관점으로 본 심박수

by 날아라빌리

가끔씩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을 때 우주적인 서사의 흐름이 내게 작동했으려니,라는 생각을 하려 한다. 천하태평인 성격이라 그런 건 결단코 아니고(설마요. 저는 초예민한 사람입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을 돌리면 조금 그럴듯하게 여겨져, 어쩔 도리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나 조금 신비스럽다 싶은 일이 일어났을 때는 호들갑을 떠는 대신 별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그걸 바라보려 한다.

..................라고 하기엔 자주 화를 냈고 자주 종종거렸구나.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그저 별빛에 기대는 스스로의 유치한 갬성에 몹시 취할 때가 있을 뿐이다.


나는 우주적인 서사와 별빛의 흐름에 기대어 망상하길 좋아하는데, 남편은 양자역학과 빛의 스펙트럼 따위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나를 붙잡고 종종 '찐'물리 이야기를 하곤 한다. 완벽한 문과 인간인 나는 남편이 그럴 때마다 '저러언, 쓸모없는 이과 녀석'이라는 생각과 함께 조용히 혀를 끌끌 차며 귀를 닫아버린다. 내게 '찐'물리는 그저 닿을 수 없는 곳. 영화 아바타 따위에서나 만날 수 있는 미지의 세계 같은 곳이다. 알고 싶다기 보단 그냥 꿈으로 남겨두고 싶다.


며칠 전 남편과 함께 유퀴즈를 보는데 김상욱 교수가 출연하여 남편의 최애 화제인 양자역학 이야기를 했다. 아바타 3도 곧 개봉한다는데, 나의 최애의 최애니 이번엔 좀 이해해보자 싶어 가만히 들어봤으나 여전히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언젠가 나는 솔로의 출연자 중 한 명이 양자역학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도 그랬다. 남편은 신이 나서 양자역학 이야기를 거들었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그저 멍하니 감정의 입자에 대한 상상을 했다. 너무나도 작고 작아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어떤 입자가 감정을 지니고 있는데, 어쩌다가 우연히 나를 스치며 어떠한 현상을 만들어내었고 다시 튕겨져 나가며 누군가에게 부딪혀 신비한 파동을 일으켰는데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 아닐까... 같은 그런 상상들.


화면 속에선 원자와 전자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교수님은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순간 이미 그 위치가 달라져 있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었는데, 문득 궁금해져 남편에게 물었다.

"봐봐, 양자역학이, 이건 여기에도 있을 수 있고 저기에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거라며... 근데 그게 어째서 과학이야? 이건 완전 문과영역인데? 어디에 있는지를 증명하는 게 과학 아니야?"

남편은 양자역학은 증명의 영역인 동시에 이해와 해석의 영역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혼자 유튜브 혹은 책으로 익히던 주제에 대해 내가 관심을 가지니 신이 났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교수님의 설명도 남편의 이야기도 모두 내가 알기 힘든 것들이라 저절로 페이드 아웃되어 갔다.

이번엔 가만히 호흡의 입자에 대한 상상을 했다. 나의 호흡이 나의 몸 안에서 만들어 내는 흐름과 머무는 위치를 알고자 해도, 바로 그 순간 내 호흡은 이미 그곳에서 사라진 후다. 나의 들숨과 날숨은 이곳에 있을 수도 있고 이곳에 없을 수도 있다. 전자의 위치를 알 수 없듯, 내 호흡 또한 순간순간 변해가고 있어 알고자 하면 할수록 저 멀리 흘러가버리니, 끝내 알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나의 혼란과 당혹을 신비로움으로 포장하는 거라 해도 말이다.


최근 수시로 심박수를 관찰하던 중이었다. 올해가 끝나가는데 나는 내년에도 이 상태일까. 살짝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지금 나아지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출근길의 심박수, 버스를 타기 전의 심박수, 버스를 타고 터널 안으로 들어갈 때의 심박수, 버스가 아닌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터널을 지날 때의 심박수, 사무실에 출근하여 자리에 앉았을 때의 심박수, 아들 친구들이 갑자기 들이닥쳤을 때의 심박수, 사람이 많은 식당에 갔을 때의 심박수, 새벽에 깼을 때의 심박수 등을 부지런히 재기 시작했다.

심박수에는 규칙이 없었다. 들쑥날쑥 제멋대로였다. 알려고 하면 할수록 안개처럼 흐려지는 느낌이었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날은 60이고 어떤 날은 150을 넘기도 하여 '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라며 맥 빠져하곤 했는데 어차피 알 수 없는 것들이라 생각하니 또 몹쓸 갬성이 발동하며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어머, 또 내게 우주의 서사가 작용하는구먼.

세상에, 이제 곧 별빛이 흐르는 소리도 들리겠구먼.


아무리 생각해도 물포(물리포기자)인 내게 양자역학은 이과보단 문과의 영역인 듯하고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는 그 뿌연 말들이 신비롭게만 들린다. 도무지 차도를 파악하기 힘든 내 호흡과도 같은 느낌이라 나는 그냥 이 모든 것은 별빛의 흐름이려니, 그 빛의 입자가 내게 닿으며 반짝이는 중이려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내년에도 우주의 서사 중심에 있으려나.

그런 상상을 하면 그럭저럭 낭만적이라 조금은 덜 초조해진다. 달력이 바뀌어 새해가 되어도 그 모든 것은 우주의 움직임이니, 나는 괜찮지 않을까. 나답지 않게, 아니 이럴 때는 그 어느 때보다 나답게, 조금 유치한 망상과 갬성에 젖어본다.


무의미한 심박수는, 이제 그만 측정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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