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인생에 그런 년이 처음이야?

by 날아라빌리

이미 몇 년 전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후배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좋아지는 것이 없다는 충고를 했다. 내가 왜 이럴까. 혹은, 왜 나아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은 증상을 더 나빠지게 할 뿐이라 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잊고 있다가 ‘어? 그러고 보니... 나 요즘 괜찮잖아?'라는 깨달음이 쌓이면서 나아지는 거라고 했다.


여기서 Q. 내가 이런 일을 자연스럽게 잊을 수 있는 인간일까?

A. 아니! 나는 뭐든 집착하며 생각하는 타입이다.

두 번째 Q. 밥 먹다가 문득, 어머, 그러고 보니 나 요즘 괜찮잖아? 깨달을 수 있는 인간일까? 내가? 과연?

A. 아니! 내가 그런 타입의 인간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곤란을 겪지도 않았을 것 같다. 바로 며칠 전까지도 하루를 쪼개고 쪼개어 초단위로 심박수를 재면서 일희일비했었다. 오우, 예쓰.(환희) 이런 시망.(침울)


한창 좋아지다가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 별일 아니라는 듯 '추세예요~'라고 했던 이야기를 후배에게 해주며 어처구니없어 하자, "사실, 그 말이 맞긴 해요. 이건 확실히 추세라는 게 있어요."라고 맞장구를 치더니 "아, 그러니까 자꾸 이것만 생각하면 안 된다니까요." 하며 다시 한번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 것 같다. 멀쩡하다가도 '어? 나 지금 심박수가 좀 빨라지는 거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호흡이 가빠졌던 경험이 몇 번 있다. 의식하는 순간 과한 반응으로 이어졌다. 그러니, 너무 거기에만 매몰되지 말라는 거겠지. 경험자의 말은 소중하니까, 그리고 나는 원래 후배의 말을 좀 잘 듣는 편이라, 어떻게든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데 '생각을 안 해야지.'라는 다짐을 하면 할수록 자꾸만 생각이 난다는 것이 문제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내 신체에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 배가 고픈데 빵 생각을 하지 않는다거나, 지금 똥이 마려운데 똥 싸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건 거의 종교인 아닌가?


나는 종교인이 아니므로 자연의 섭리에 심혈을 기울여 내가 가진 컵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나의 작은 컵 안에 뭐가 들었나. 그 컵은 어느 선에서 넘치게 되나. 가끔은 한창 유행하던 뇌구조 그림을 그리듯 그 컵을 그려보기도 한다. 어느 날은 세로로 쪼개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가로로 쪼개어 그리기도 한다. 층으로 나누어져 있을까? 아니면 세로로 구획 지어져 있을까? 이렇게도 그려보고, 저렇게도 그려보는 것이다.

후배가 알면 '차암내, 그러니까 안 낫는 거죠.'라고 잔소리를 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나야말로, 야, 너 똥 마려울 때 무슨 생각해?라고 되물을 수밖에.



어쨌든 몇 번 그려본 끝에 내린 결론은 내 컵은 대충 세 구역 정도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어딘가엔 '쓰다만 소설'도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날. 남편과 김치찌개를 먹던 중에 옆 테이블의 대화가 귀에 콕 박혔던 것이겠지.

"네 인생에 그런 년이 처음이야?"

라고 외치던 그 말.


남편이 점심으로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다. 원래 유명한 곳은 따로 있는데 근처에 지점이 생겼다며 가보자고 해서 찾아간 곳이었다. 빈자리에 앉아 김치찌개를 주문한 후 기다리고 있는데 옆 테이블의 여자 애 두 명이 대낮부터 심각한 얼굴로 소주를 나눠마시고 있었다. 이미 테이블 위엔 빈소주병이 두어 병 있었으며 꽤나 얼큰해진 상태였기에 제법 커진 목소리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테이블 사이가 아주 가까웠기에 남편과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네 인생에 그런 년이 처음이냐고?"

나와 가까운 쪽에 앉아 있던 여자애가 벌써 두 번이나 묻고 있었다. 답답하다는 듯 대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대체 어떤 년이길래?라고 내가 물을 뻔했네.

"어, 나는 처음이지." 맞은편 여자애가 드디어 대답했다.

"그런 년이 처음이라니 그동안 편했네. 나는 이미 많이 겪어봤어. 야! 내가 저번에 말해줬던 애 기억나지? 걔랑 결이 같네, 같아."

이미 많이 겪어봤다는 말에 슬쩍 바라보았다. 앳된 얼굴. 기껏해야 20대 후반인 거 같은데 뭘 많이 겪었다는 걸까.


그녀는 그런 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취기 어린 목소리로 내뱉는 욕설이 꽤나 찰져서 조금 귀여웠다. 함께 나눈 대화가 아니라 그저 들은 것이니, '그런 년 이야기'를 짧게 옮겨보자면 이러하다.

옛날 옛적에 A가 있었다. A는 가구 쇼핑몰 오프라인 매장의 직원이었는데 같은 매장 직원 중에 그런 년(욕설 같으니 이하 'B'라 칭하겠다)이 있었다. 어쩌다가 A는 B와 점장이 불륜 관계임을 알게 되었는데 크게 관심 없는 일이라 모른 척했으나, A가 눈치챘다는 걸 알게 된 B가 A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묘하게 따돌려지거나 은근한 까임을 당하곤 했는데, 그런 일은 번번이 A만 알 수 있는 미묘한 온도 속에서 일어나곤 하여 그 부당함을 표현하기엔 애매한 상황들이 많았다.

어느 날 비가 많이 내려 새벽부터 재난문자가 오던 날이었다. 겨우 출근을 했더니 매장에 아무도 없어 이상했다. 알고 봤더니 출근 시간이 10시로 연기되었는데 비상연락망을 돌리던 B가 A를 빼버렸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A가 크게 화를 내었는데, 실수였다고 사과하던 B가 엉엉 울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A는 고작 그런 일로 그렇게까지 화를 내버린 몹쓸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슬픈 이야기.


잘 모르겠지만, 어떤 '촉'이 왔다.

그런 년. 어쩌면 나도 아는 년, 인생의 어느 고비에 꼭 그렇게 귀신처럼 나타나는 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지만 즐기기 드럽게 힘든 년, 하늘을 향해 너나 즐겨라, 라며 던져버리고 싶은 년, 어쩌면 우리 모두 조금은 아는 년. 아니, 우리 '모두'는 아니라도 여자들은 쫌 아는 년. ‘여적여’라는 프레임을 상당히 거슬려하지만 가끔씩 그 말에 진짜 찰떡인 년.

내 컵의 물이 찰랑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그런 년이 옆에 있었다. 아니, 나 말고, 내가 쓰다만 소설 속에 비슷한 애가 있었다. 걔는 진짜 뻑하면 울었다. 일을 하다 보면 열받거나 서러워서 눈물이 날 때가 있긴 한데, 그럴 때면 보통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울기 마련이다. 일 때문에 운다는 건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니까. 근데, 걔는 꼭 남자들의 흡연실 바로 앞에서 울곤 했다. 남자들의 사랑방 같은 곳. 모든 소문의 근원지. 덕분에 '너네 또 무슨 일이야?'라는 질문을 종종 받아야만 했다. 무슨 일인지는 나야말로 궁금했는데 말이다. 또. 왜. 쳐우는. 걸까. 아, 그러니까 나 말고, 내가 쓰다만 소설 속 등장인물들 말이다.


근평이 너무도 중요한 때였다. 승진 순위가 뒤로 밀리고 싶지 않았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야 했고 더 이상은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싶지도 않았다. 적어도, 걔가 흡연실 앞에서는 울지 않게 해야겠구나. 다짐했다. 나랑 친해지고 싶은데 내가 자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며 울었다기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친구하고 싶다는 사람이 지금 나한테 이러나요? 그런 호의를... 느낀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는데요?라는 말은, 필요 없는 말이라 그냥 삼켰다. 잘할 수 있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냥. 잘. 해내면 되는 일이었다.

다음날부터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어쩌면 진실로 다정하지 않았을 수는 있겠지만 그 시기의 나에겐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없었다. 진심은 약점이고 가식은 무기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근평을 생각하면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 거는 거? 헛, 너무 쉬웠다.


직장에서의 정치질과 '찐'가식을 그렇게 배워 갔다. 요령 없는 진실은 위험했기에 부드러운 거짓으로 나를 포장하고 싶었다. 그게 똑똑하고 멋져 보여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잘 모르겠다. 그때를 생각하면 그저 뭔가 불투명하고 까마득할 뿐이다.

마음속은 타인에 대한 경멸과 스스로에 대한 혐오로 가득한데 겉으론 웃고 있었다. 출근하는 순간 새로운 인격을 장착한 후 조금 이상한 나라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오늘도 무사히. 오늘도 최선을 다해 가식적으로. 오늘도 친절한 거짓말을 밥 먹듯이 잘 해내자. 그런 다짐을 하면서 스스로를 마구 비웃었다. 좋냐, 병신아.

어차피 걔 역시 나에게 진심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친구인 '척'을 해주어 남들 눈에 혼자 있는 애로 보이지만 않으면 괜찮은 듯했다.

그렇게 친구인 '척'하다 보면 가끔씩 헷갈릴 때가 있긴 했다. 내가 주는 마음이 매번 거짓은 아니어서, 우리가 조금은 친구가 된 것 같은 순간도 있었는데 바로 그다음 순간 온전한 착각이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차갑고 단호한 거절을 손에 쥐고선 너무도 혼란스러워 도대체 네 울음의 이유는 무어냐, 너는 뭘 위해서 그리 열심히도 우는 것이냐,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 물론 이것은 내가 쓰다만 소설 이야기다. 나의 기억인지, 나의 망상인지. 헷갈리는 그 소설.


그때 배운 거짓과 그때 느낀 거절과 그때 새긴 비굴함의 흔적이 내 컵 안에 여전하다. 그래서 아직도 가렵고, 아직도...... 수치스럽다.


잠시 후 옆 테이블의 둘은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창 너머로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불쑥 묻고 싶었다.

너 말이야. 만약에 비상연락망을 네가 돌렸다면, 너는 B한테 연락했을까? 너 정말 B와 점장 관계를 모른 척했어? 그렇고 그런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하고선 은근히 무시하진 않았을까?

그 질문은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너 말이야. 너도 사실 남들 다 보는 데서 울고 싶었던 거 아니야? 누구라도 알아주길 바라며 두리번거리지 않았어? 매일 말 걸어주는 척하면서 속으론 무시하는 마음이 없었을까?

누가 더 '그런 년'일까. 너는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어?


나는 그들의 대화가 재밌었는데 남편은 아주 기가 다 빨린 표정이었다. 아이고, 대낮부터 저렇게 취해서 어쩌냐, 하며 안타까워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뒤를 돌아봤더니 그들도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오고 있었다. 쟤들 2차 가나 보다,라고 했더니 대낮부터 마셨으니 저녁까지 달리는 거지,라고 남편이 대답했다.


그들의 마지막 대화가 계속 귀에 맴돌았다.

"아니, 그러면 그런 년은 어떻게 상대해야 해?"

답이 궁금하여 귀를 쫑긋거렸는데 "그러게, 그건 나도 아직 잘 모르겠네."라는 대답을 하고 있어 살짝 실망했다.

근데, 그거 답이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모두 조금쯤은 그런 년일 수도 있고, 언제든 그런 년을 만날 수도 있는데.

상황에 따라 내가 그런 년이 되든, 네가 그런 년이 되든, 인생에서 그런 년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에이, 어쩌긴 뭘 어째. 그냥 적당한 요령과 적당한 가식으로 낄낄거리다가 가끔씩 소주잔만큼은 진심을 기울이기도 하면서 하루씩 살아가는 거지. 너네 지금 하고 있는 거처럼.

느린 걸음으로 흔~~ 들 흔~~ 들 걷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들을 했더랬다.

나도 그때 저렇게라도 해볼걸. 그럼 조금은 덜 미웠을 텐데. 그런 후회도 살짝 했더랬다. 아니, 나 말고, 내 소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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