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시 사나워지나요?
의사 선생님께 두 번이나 했던 질문이다. 진료를 받을 때 내가 몇 번씩 반복했던 질문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숨이 막힌다는 느낌은 실제가 아닌 제 상상일까요'이며,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이 질문이었다.
만약 약을 끊게 되면...... 저는 다시 사나워지나요.
나는 아침저녁으로 세 알의 약을 먹는다. 비상 상황(갑자기 호흡이 가빠질 때 등)에만 먹는 '필요시'의 약봉투엔 노란색 약 한 알이 들어 있다. 나는 이 약들이 뭔지 잘 모른다. 딱 한번 내가 먹는 약이 무언지 물었을 때 선생님께선 항불안제라고 하셨다. 불안을 줄여주는 약이려니 하며 삼키고 있지만 내가 체감하기론 이 약은 뭔가 착해지는 약 같다. 나는 요즘 좀... 많이 착해졌다.
"나 확실히 착해진 거 같아."
남편한테 이 말을 자주 했더니 엄청 비웃으며 개과천선한 사람처럼 굴지 마라며(나는 남편의 이런 농담을 너무 재밌어하고 귀여워한다. 세상에서 우리 남편이 제일 웃긴 거 같다.) 그냥 조금 나아진 정도라고 하는데, 어쨌든 나는 착해졌다.
이전에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과 조급함을 표시 내지 않기 위해 기를 써야 했다. 억지로 웃었고 억지로 괜찮은 척했기에 감정적으로 쉽게 지쳤으며 사적인 관계나 모임 등은 최대한 피했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와 아닐 때의 괴리가 너무 커서 가끔은 나도 내가 헷갈렸다. 어떤 내가 진짜 나인가.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나조차도 쉴 곳이 없었다. 무수히 많은 '나'와 그 각각의 '나'가 지닌 가식과 거짓에 휘둘리며 짓눌려 사는 듯했다. 그런 자신에 대한 혐오가 꽤나 깊었는데, 진짜로 조금 착해지다 보니(네에... 그렇답니다?) 내 속에 있는 많은 '나'들 사이의 괴리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 자기혐오도 많이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나는 착해졌을 뿐만 아니라 미세하지만 밝아지고 있는 중이다. 요즘은 종종 신이 난다. 억지로 꾸며낸 텐션이(나름 억텐 전문가다.) 아니라 요즘 말로 '찐텐'이 새어 나오는 중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약을 끊게 되면, 나는 다시 집 밖 세상이 전쟁터 같기만 하여 잔뜩 날이 선 채로 가드를 올리고선 예민해지는 것인지.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다가 결국엔 또 거부하게 되는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그렇게 짜증을 내고 괴팍하게 굴게 되는지. 그리하여, 다시, 예전처럼, 사나워지는지.
(머쓱한 표정으로) 선생님, 이상한 말 같지만 저는 지금 제가 딱 좋거든요? 제가... 착해졌어요.
(살짝 웃더니)아, 나쁜 사람이셨어요?
(머뭇거리다가)네, 그랬던 거 같아요. 원래도 사람 관계를 힘들어했어요. 아, 사람들은 제가 그런 줄 잘 몰라요. 엄청 가식적이라... 암튼, 숨이 잘 안 쉬어지기 시작할 무렵엔 가족들한텐 약간 폭군처럼 군 거 같아요. 사람도 만나기 싫고 말도 하기 싫은데 나가서 생활을 해야 하니까 그 스트레스를 가족들한테 풀었어요. 제가 또 그렇게 될까 봐 너무 걱정돼요. 그게 공황장애랑 관계가 있나요? 아니면, 이건 다른 병인가요? 사실은 제가 대인기피증인가, 생각하고 있던 중에 숨이 안 쉬어졌어요. 아! 이런 것도 합병증이 있나요?
(계속 웃더니)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그냥 에너지가 다 소진되어서 감정을 처리할 여유가 없었던 거예요. 그럴 땐 다들 많이 예민해져요. 그러다가 공황장애가 나타난 거고요. 공황장애가 나아져서 약을 안 먹게 되어도 나쁜 사람으로 안 돌아가요. 아파서 그랬던 거고 다 나았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며)아, 그런가요.
진료를 받고 나오면서 안심했다. 지금의 편안함을 잃고 싶지 않았다.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보단 분노가 일지 않는 이 시간의 평화로움이 사라질까 봐, 그 이후를 더 걱정하고 있을 정도로 나는 요즘 꽤 괜찮다.
얼마 전 남편과 경주를 찾았다. 운 좋게 신라금관전을 관람할 수 있어 신이 났다. 오랜만에 남편의 팔을 붙잡은 채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은행나무와 붉은 단풍나무 길을 걸으니 설레기도 했다. 남편이 휴대폰 카메라로 내 뒷모습을 끊임없이 찍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언제 어디서든 내 뒷모습까지 보아줄 사람은 남편뿐일 것이다. 남편의 시선을 빌려서 볼 수 있는 나의 모습. 남편이 데려다 놓을 나의 뒷모습을 생각하니 단단한 온기가 느껴졌다. 스멀스멀 웃음이 나와 고개를 뒤로 기울이니 가을 하늘이 눈앞에 있었다.
그래, 가을이네, 가을이야.
그렇게 가을 속을 걷다가 천마총 안에서 갑자기 호흡이 힘들어졌는데 남편을 걱정시킬까 봐 유물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숨을 고르려 했으나 내 표정을 보고 눈치챈 남편이 이제 그만 나가자고 했다. 별 일 아닌 듯 저기 의자에 앉아서 좀 쉬자며 먼저 털썩 앉고 있었다. 남편 옆에 앉아 노랗고 빨간 단풍들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 가을을 느껴본 것이 언제였더라. 돌고 도는 계절의 언젠가 속에 이런 순간이 또 있었던가.
확실히 나는 전생을 믿는다. 남편과는 300년 전에 모나코에서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300년 후에 같은 하늘 아래에서 다시 마주칠 것이다. 그때 어떤 장면을 떠올리며 남편과의 시간들을 기억해 낼까. 언제나 그것이 이번 생의 과제 같았는데 천마총 앞에서의 지금 이 순간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고대 무덤을 앞에 두고 괜찮냐고 묻던 이전 생의 인연. 오, 제법 그럴 듯 하구만. 만족스러웠다. 그윽하고 충만한 가을. 그 정중앙에 남편과 내가 있었다.
며칠 전엔 이전 직장 동료들과의 약속이 있었다. 먼저 만난 동료와 함께 모임 장소로 가던 길에 갑작스레 호흡이 힘들어졌다. 지하철 안이었다. 전자시계로 심박수를 확인해 보니 144를 찍고 있었다. 이 정도면 버스를 놓칠 것 같아 전속력으로 달렸을 때의 심박수다. 곧 많이 힘들어질 것 같아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물과 함께 약을 먹었다. 그날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지 중간에 한번 더 호흡이 힘들어졌고 결국 나 때문에 조금 조용한 장소로 옮겨야 했다.
"맥주 마시다가 나 때문에 지금 찻집으로 옮기는 거야?"
괜히 머쓱해져 미안하다고 했더니 모두들 괜찮다고 했다. 자리를 옮겨 나는 캐모마일티를 마셨고 동료들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그 순간의 기분이 꽤 낯설면서도 좋았다. 뭔가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포근함이었다. 이런 미안함과 괜찮음을 나도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걸까.
이전의 나라면, 나를 이유로 어떤 상황이 변하거나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불편해지는 걸 못 견뎌했다. 큰 빚을 지거나 엄청난 폐를 끼친 듯하여 주변에서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죄인이라도 된 듯 한 표정으로 쩔쩔매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주고받는 미안함과 괜찮음들이 모두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살다 보면 우리 서로 그럴 수도 있지. 누군가는 아플 수 있지. 오늘은 내가 아팠지만 내일은 네가 아플 수도 있는 거지. 그럴 때면 서로 한쪽 어깨를 내어주며 기대어 쉬게도 하고 숨통이 트이게 등도 두드려 주고 하는 것이지. 어쩌면 이럴 때는 미안하다는 말보단 고맙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구나.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못 했을 생각들이었다.
자존감이 낮고 자기혐오가 깊은 나이기에 이런 모습을 보이느니 다른 핑계를 둘러대며 지하철에서부터 집으로 돌아갔을 텐데, 그날의 나는 끝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후배의 썸남 이야기를 들으며 즐겁게 웃었고 연하남이라 철벽을 쳤다는 후배에게 '저점 매수가 기본인데 너는 진짜 정신을 못 차렸구나? 라떼는 말이야~~' 하며 훈수까지 두었다. 그날 내 심박수는 순식간에 140을 찍기도 했지만 대화는 깊고 즐거웠으며 차는 따뜻하고 맛있었다. '그래서, 다음엔 언제 볼까?'라는 소리가 나한테서 먼저 나오기도 했다. 단언컨대, 지난 몇 년간 단 한 번도 입밖에 내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다, 다음이란 그 소리.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마지막 글의 제목은 '안녕할 수 있을까'로 정했었다. 언제 마지막 글을 쓸 수 있을지, 어떤 결말을 만나게 될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마지막 글은 '안녕'에 대해 써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여전히 '안녕'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안녕에 대해 써야지,라고 다짐했던 순간의 안녕과 지금 내가 생각하는 안녕의 의미 또한 조금은 달라진 듯하다. 호흡이 잘 되었던 이전의 나는 안녕했던가. 생각해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아직도 심박수가 70에서 140까지 오르내리는 지금의 나는 안녕하지 못한 건가, 하면 그 또한 아니다. 지금의 나는 확실히 안녕하다. 그 어느 때보다 안녕하며 고요허고 즐겁다.
앞으로의 나는 어떤 안녕을 바라야 하나.
다시 사나워지진 않는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괜찮다는 생각을 했었다. 약 이까짓 거. 평생 먹으라고 하면 그냥 비타민처럼 먹지 뭐,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일테고, 내가 지금 새롭게 익히고 있는 고마움과 미안함, 괜찮음과 충분함, 다음을 기약하게 되는 설렘과 기대를 잘 기억하면서 새로운 안녕의 의미를 조금씩 만들어가야 할 때 같다.
여러 가지 안녕을 많이 만들어두어 언제든 안녕할 수 있게, 자주 안녕할 수 있게, 안녕하지 못하다가도 재빨리 안녕할 수 있게, 작고 귀여운 안녕을 여기저기에 숨겨두어야겠다. 가을 소풍을 와서 보물찾기 놀이를 하듯 나의 안녕을 찾아내며 부지런히 신나 하고 싶다.
+ 최근 내 심신에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는 세자 저하.
티브이를 보다가 참지 못하고 카메라를 꺼내어 사진 찍어 보긴 아주 오랜만인 거 같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참 잘생겼다. 발로 찍어도 잘 생겼을 테고, KTX 타고 가면서 휘리릭 찍어도 잘 생겼을 얼굴이다. 웃어도 잘 생겼고, 울어도 잘 생겼고, 비 맞아서 젖으면 더 잘 생겼고, 얼굴에 피 묻히고 째려봐도 잘 생겼고, 울면서 비 맞으면 최고 잘 생겼고.(아, 이건 내 심장에 좀 해로운가)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너무 잘생겨서 나도 모르게 "헐, 존잘!"이라고 내지른 후 본방은 물론 재방까지 전부 다 보고 있다. 보고 또 봐도 재밌다. 그냥 얼굴만 봐도 너무 웃기다.
단군의 자손답게 홍익인간 정신을 실천 중인 세자 저하. 참으로 널리 이롭다, 이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