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가 왔다.
도어락 키패드가 올라갈 때부터 반가움이 밀려온다. 딸아이도 그런지 현관으로 우다다 달려나간다.
뛰지마~ 뛰면 안 돼~라고 말하는데도 어째 내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나지 않는다.
엄마.
육아에 지친 내게 구세주같은 존재.
평생을 날 키워오시면서 몸고생 마음고생 많으셨을텐데 이젠 손주들 봐주시느라 문턱이 닳도록 자주 와주신다.
얼마나 감사하고 또 죄송한지.
엄마 덕분에 잠깐 마트에 다녀올 여유가 생겼다. 둘째가 잠이 든 터라 집을 나서는 마음이 더 가볍다.
비가 오지만 우산 하나쯤이야 가뿐하다.
평소에 유모차, 아기띠, 기저귀 가방 속엔 분유물 보온병과 젖병, 큰 애와 작은 애의 기저귀, 여벌 옷 등등 온갖 짐을 이고 다니다보니 혼자 외출할 때는 가뿐함이 배로 느껴진다.
아이가 없을 땐 비오는 날엔 비가 와서 우산 들고 다니는게 그렇게 귀찮았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엔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출구는 왠지 피하게 되고 작은 짐들도 참 버겁게 느낀 적이 많았다.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몰랐을 지금의 이 가뿐함.
첫 아이를 낳고 백일만에 처음으로 혼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외출을 하던 날은 감격만큼은 아니지만 종종 혼자 외출할 일이 있을 때면 두 손이 가볍다는게 꽤나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마트에 가는 길에 지나가야 하는 지하차도. 아이들과 갈 땐 엘리베이터를 타야하지만 오늘은 계단을 이용할 수 있다.
우산도 들고 바지 끝자락이 빗물에 조금 젖은 것 같지만 상관없다.
반가운 계단, 계단을 오르 내리는 길이 이렇게 쉽고 빠른 거였다니.
물론 아이들과 함께할 때의 즐겁고 귀여운 순간들은 없지만 나홀로 맛보는 조용한 산책길에 오늘 따라 계단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