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결함'이 있어서 '세일'을 했다.]
쥬도는 목덜미에서 등으로 내려가는 부분에 태어나면서 생긴 기형이 있다.
어딘가가 아프거나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고, 단순히 미관적으로 예쁘지 않은 부분.
그 부분만 털이 자라지 않았고 구멍이 난듯한 모습에 쥬도가 워낙 살이 없는 이유인지 기형의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각도에서 보면 몸의 뼈도 반듯하지 못하고 어딘가 살짝 비틀어진 듯한 느낌이 있기도 하다.
소니야에게 쥬도를 맡기고 한국행을 했는데, 페럿들 때문에 도저히 재합사가 힘들었는지 일주일 만에 소니야는 근처에 사시는 자신의 부모님 집에 쥬도를 옮겼다. 역시나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그들의 고양이 이기 때문에 휴가 때마다 내가 돌봐줄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소니야에게 자동으로 맡겨지고 , 그의 남자친구의 쟝은 역시나 반가워하지 않는다.
쥬도가 잘 지내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이미 부모님 집에 보내진 터라 소식을 알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나마 그들을 통해 얻게 된 사진 한 장이 있었는데, 화질도 너무 떨어지고 빛도 어두운 데서 딱 봐도 '대충 되는대로' 막 찍은 사진을 받았다.
쥬도가 분홍색 동그란 쿠션 위에서 매우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고 그 바로 옆에는 어두운 색의 쿠션에 타이코라는 소니야가 키우던 늙은 요크셔테리어가 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쥬도와 나란히 있었다.
타이코 또한 페럿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바람에 결국에는 엄마와 동생네가 돌아가면서 돌봐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늙은 강아지와 늙은 고양이의 늙은 우정이라니.
이 둘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이며, 둘 다 나이가 많아서 서로를 공격하거나 피곤하게 만들지 않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아주 바람직한 관계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진을 끝으로 쥬도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한 달 만에 한국에서 돌아와 하루를 지루 하게 보낸 후 그다음 날 쥬도를 데리러 가기로 한 날이 왔다.
사실 내가 집에 딱 도착했을 때 쥬도가 나를 평소처럼 마중 나오는 모습을 꿈꿨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해서 조금 실망을 했다.
나는 쥬도가 외출 후 나를 맞아주는 그 장면을 너무 좋아한다. 일명 집순이인 나는 언젠가 며칠을 연달아 밖에 안 나가고 집에 박혀 있을 때가 있었는데 잠깐이라도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고 싶었던 딱 한 가지 이유가 바람을 쐬고 산책을 하려고가 아닌, 나갔다 들어왔을 때 쥬도가 맞아주는 그 살가움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온 후에나 복도로 걸어오는데 내가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바닥에 서서히 가까워지면서 드리워지는 그의 그림자. 그것이 보이기 시작해야 마음이 놓인다.
조금 오랫동안 외출을 하고 들어오면 너무 반가운 나머지 자다가 일어나서 걸어오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달리다시피 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 장면은 가끔만 볼 수 있는 희귀 장면으로, 그림자만 봐도 급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어서 나의 웃음 포인트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너무 예뻐서 격하게 안아주고 싶지만, 역시나 강아지가 아닌 고양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부드럽게 애칭 불러주기와 일단 손을 코로 가져간 후 쥬도가 냄새 인증(?)을 해주면 그때서야 턱과 머리를 쓰다듬고 엉덩이를 토닥여 줄 수 있다.
또한 가끔은 잠들기 전에 다음날 쥬도가 방 문 앞에 와서 꼬리를 들고 야옹하는 그 소리를 듣고 싶어서 빨리 자고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대에 부풀어 잠든 적도 많다. 어릴 적에 좋아하는 책을 다음날 읽기 위해, 좋아하는 장난감을 받았을 때, 재미있는 놀거리나 좋아하는 사촌이 집에 오는 날 이런 때에 느꼈었던,
잠자는 시간 까지도 지루하게 느껴지고 다음날이 기대되던 밤이, 어른이 되고 나서는 사라졌다.
전처럼 재미나고 기대되는 일은 나에게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눈을 뜨면 피곤과 피로, 무기력함, 정신을 차려서 출근을 해야 하는 루틴으로 들어가고 나서는 단 한 번도 빨리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쥬도를 만나고 나서는 아침이 개운해졌다. 그리고 나아가 아침이 빨리 와서 저 엉덩이를 팡팡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잠들 때도 많아졌다.
아침이 기대되어서 미소 지으며 잠들 수 있는 밤이 내게 찾아왔다.
소니야 부모님의 집의 문이 열렸다.
시컴한 무언가 불쑥 나왔다.
대형견에 속하는 몸집에 검은색 꼬불꼬불 윤기가 나는 털이 붙은 커다란 강아지 한 마리가 코를 내밀었다.
커다란 발과 발톱의 소리를 바닥에 툭탁 툭탁 내면서 침을 질질 흘리며 꼬리를 마구 흔들고서 정신없이 나를 맞았다. 앞발로 나를 미는데 내가 감당이 안되고 밀릴 정도로 힘이 세지만 아주 착해 보이는 강아지였다.
이렇게 큰 강아지가 있었다고?
나는 너무 놀랐다. 그리고 그 뒤에는 흥분한 노견 타이코가 또 질세라 달려 나왔다.
우리 쥬도는 어디에?
강아지들의 난리 법석 환영 파티가 끝나고 이 강아지들을 진정을 시킨 후 조금 더 깊숙이 집안으로 들어갔더니 그제야 한쪽에서 조용히 나타나는 어떤 덩어리가 보였다.
하얗고 잿빛이 나는 작은 몸집.
너무 조용해서 있는지도 티가 안나는 아이. 발걸음 소리조차도 나지 않는 아이.
그 난리 통에도 혼자 조용히 옆에 와서 있긴 있는데 굳이 시끄러운 너희들과는 섞이지는 않겠다는 모습으로 새침하게 있었다.
나는 강아지들 때문에 정신이 빠진 혼을 겨우 진정하고 소니야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서 마침내 쥬도에게 다가갔다. 사람이 많아져서 경계를 하고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던 건지 계단에 멀뚱이 서 있었다.
나대는 심장을 진정하고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댔다. 냄새를 맡게 했더니 열심히 손을 훑었다.
그리고 잠시 후 드디어 '인증'을 해줬다. 고개를 꺾어서 턱을 만지게 해 주고 내 손에 코를 콩콩 박았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꽉 안아버리고 싶었지만, 일단 소니야의 부모님도 계시고, 사람들도 바글 하다 보니 쥬도가 놀랄까 봐 조심스러운 마음에 맘껏 불러보지도 못한 채, 인증(?)만 받고 아쉽지만 일단 돌아섰다.
그리고 어머님이 우리를 위해 간단한 요깃거리를 준비해 주신 덕에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
가장 놀랐던 것은 쥬도가 자신의 덩치의 거의 열 배 정도나 되는 크기의 강아지와 같이 지냈다는 것.
이게 가능한 거냐고 어떻게 하신 건지 물었다. 난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저렇게 큰 대형견과 4kg도 안 되는 작은 고양이가 함께 나란히 있는 것. 매우 인상 깊었다.
폴카라는 그 강아지는 일단 몸집은 크고 믹스견인데 골든레트리버같이 아주 선한 눈과 성격을 가지고 있단다.
그리고 폴카가 어릴 때 고양이와 지내봤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합사가 잘 이루어졌다고 한다.
나는 그 강아지 둘과 쥬도가 한꺼번에 내 시야에 전부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늠름함'.
어찌나 늠름해 보이던지. 마치 잘하리라 믿었던 아이가 생각한 것만큼 잘해줘서 좋은 결과물을 냈을 때 느끼는 감정처럼 , 대견스럽기도 하고.
오랜만에 다시 만난 고양이에게서 반가움보다 먼저 든 생각이 늠름함 이라니.
그러고 나서 소니야 어머니의 썰이 시작되었다.
[작은 '결함'이 있어서 '세일'을 했다.]
라고 쥬도를 설명했다.
물론 이 고양이는 소니야 어머니의 것이 아닌, 소니야 어머니 본인의 친어머니가 키우시던 고양이였다.
소니야의 어머니는 그의 딸과 마찬가지로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화법을 가지고 있으셨다.
나는 결함과 세일의 연관성을 매우 잘 알고 있다.
물론 결함이라는 게 없지만 세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나의 내적 질문은 이랬다. 과연 고양이에게 '결함'이라는 단어와 '세일'이라는 단어가 진정으로 어울리는 것인가를 긴가민가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소니야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를 'sans coeur'라고 표현했다. 그리고서' 아니 근데 정말로'라는 말을 뒤에 덧붙이셨다.
직역하면 '심장이 없는',
의역하면 정이나 연민이 없고 차가운 분이셨다('아니 근데 정말로')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쥬도를 데려올 때 그냥 사실 세일이 된 고양이라서 골랐던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세일의 이유는 결함.
얼핏 듣기로는, 소니야네 할머니는 예전으로 치면 집안 대대로 부가 대물림 된 일명 부르주아 계급에 속하시던 그런 분이셨는데 딱히 고양이를 좋아해서라기 보다도 그냥 비싼 순종 고양이를 하나 집에 들이고 있으면 보여주기에 좋아서, 그래서 쥬도를 입양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그래서 쥬도를 거의 가둬놓고 키우면서 집안에서 접근성을 제한하고, 여기저기 못 가게 하는 곳을 만들어 집안에서 쥬도가 자유롭게 다니지 못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도 나는 에이 설마 하며 전부 믿지 않았다.
그런데 그 할머니의 딸이 확인 사살처럼 엄마가 그런 분이셨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보고 내가 들은 이야기가 사실에 가깝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니야의 어머니는 쥬도 같이 '얼굴에 감정표현이 없는(unexpressive)' 고양이들, 코가 찌그러진 고양이, 종이 정해져 있는 고양이들이 너무 싫다고 하셨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하나도 예쁘게 보이지 않는다고.
그래서 돌봐준 삼주는 무사히 지나가서 다행이지만 그걸로 매우 충분하다고 하셨다.
좋았다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 '충분했다' 고.
쥬도는 왜 이렇게 환영을 받지 못하는 고양이가 되어있는 걸까?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우리가 만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고양이 자체가 싫다고 하시면서도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라면서 벽에 걸려있던 사진을 빼오셨다.
그리고 왜 싫어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소니야의 어머니는 작은 고양이 하나를 입양했는데 그 고양이를 집에서 그냥 밖에도 왔다 갔다 하게 했고(프랑스는 주택에 살면 자주 있는 일)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집 앞에 나갔다가 차에 깔려서 죽었다고.
듣기는 거북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하시며 직설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때의 충격이 너무나 크고 당시에 정이 너무나 많이 들어있었고 너무 많이 사랑했는데 그로 인해 다시는 고양이를 절대로 키우지 못하겠다고 하셨다.
소니야의 어머니의 말에서 계속 들렸던 싫어한다는 표현을 내가 조금 부드럽게 해석을 해보니,
[싫어한다 =너무 큰 기대를 했고 , 사랑을 했는데 실망감을 느꼈다. 마음이 아파서 상처를 받았고 그 때문에 고양이를 보호해 주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이제는 키우지 못하겠다.] 정도로 풀어봤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 나는 그 사정들을 이해해보려 한다.
소니야는 언젠가 자신은 퍼렛과 함께 지내는 것으로 충분하고 자신이 아이를 갖고 싶지 않은데 사실 그 이유를 찾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확실한 건 그 이유가 자신의 어린 시절, 자라 온 환경에서 나온 게 분명하다고 인식하여 원인을 찾아보고 이해해보고 싶어서 한 달에 한 번씩 심리상담을 받고 자신의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소니야의 어머니도 나름대로의 사정, 트라우마로 고양이를 품고 싶지 않으시게 된 것처럼.
모두는 각자의 환경, 이야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섣불리 잠깐의 스쳐가는 말로써 그 사람을 혹독하게 판단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소니야의 어머니의 직설적인 말들도 나쁘거나 불편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쥬도의 목덜미 '결함'도 스쳐가듯 봤다면 은근한 혐오점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이 고양이의 모습, 성격
즉 그만의 스토리를 알고서 보니까, 그 결함을 결함이라고 생각해 보지도 못할 만큼(솔직히 초반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하나의 유니크한(독특한) 그 만의 모습, 특징, 매력으로 느껴졌다.
그의 '가격 인하' 이유인 '결함'은 오히려 나에게는 하나의 영감이 되었다.
나는 쥬도의 그 '결함'으로 인해 유독 푹 파인 울퉁불퉁한 목덜미를 보면서,
깊고 진한 그 굴곡 덕분에 아주 멋진 한 장의 수묵화를 보았다.
[산등성이- 쥬도가 제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면 그의 몸에 드러나는 굴곡들은 잠시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가 준다. 아빠 차를 타고 외곽으로 나가면 늘 보았던 멀리 보이는 웅장한 산들의 산세, 잘 뻗은 산등성이, 한 장의 수묵과 같은 바림. 저 가냘프고 작은 몸에는 참 많은 영감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