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 Aug 24. 2023

라면은 라면이다.

수프를 바꾸지 않으면

밤에 딱히 할 일이 없지만, 결국 핸드폰으로 이런저런 것을 시청하다가,

이 짓이 물리면 그제야 책을 편다. 그러다, 다시 핸드폰을 집어든다.

아들에게 핸드폰 중독이라고 놀릴 처지가 못된다.

유튜브에는 별 것 아닌 내용에 자극적인 제목과 화면 구성을 한  저질 동영상이

넘쳐난다. 양질의 영상을 찾는 것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알면서도 그런 영상에 클릭하는 내가 문제다. 이런 유혹의 대가는

시간 낭비이며 내일을 위한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로 누적이다.

무엇보다, 바라는 삶의 모습으로부터 점점 확실히 멀어지는 것이다.

 

내가 인내심이나 자재력이 부족한 인간이라는 것은 중고등학교 시험기간에 이미 알다.

고등학교 때, 시립 도서관을 간 적이 있는데, 우연히 초등학교 때 함께 운동하던

1년 선배를 보게 되었다. 딱히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인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공부에 지쳐' 30분이 멀다 하고 들락거리고 있을 때, 그 선배는 9시에 자리에

앉아 공부를 시작한 모습 그대로, 점심시간까지 이어진 것을 보고

나와는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비평준화 지역이었던 지역에서 명문고를

갈만했다. 부러웠다. 점심 후에는 식곤증을 핑계로 더욱 자주 밖을 들락거렸다.

그는 아침에 봤던 그 모습 그대로 5시까지 꼼짝하지 않고 공부하다가, 가방을 챙겨

조용히 자리를 떴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그 선배와 나는 다른 길을 이미 가고 있었다.

나처럼 게으른 인간은 '사람 일은 모른다'는 로또당첨 같은 허망한 희망의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혹시나 모를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지만, 하는 짓이 매일 같은데 내일이 다르기를

바라는 것은 내가 미친 것이 아니라면 달리 설명한 길이 없다.


지금의 나는 수많은 선택의 결과이다. 내 인생은 라면이다.

라면은 수프가 99% 맛을 결정한다. 거기에 달걀이나 잘게 썬 파정도가 첨가된다.

그렇다  이것을 '달걀'면나 '파'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라면이다.

것이 다른 음식이 되려면  완전히 다른 양념과 조리법이 필요하다.   


평생 라면으로 살지 말자. 그 맛난 수프를 버리자.

 


신은 인내심이 강한 사람과 함께 계신다. - 코란




작가의 이전글 침묵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