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통장에 꽂히진 않는다
∙ 이 매거진은 IT 스타트업 굿너즈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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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여한 정부 과제 창업 인턴제는 1년의 인턴 근무를 마친 뒤 평가에 따라 지원금을 확정받고 (6천만 원 ~ 1억 원) 창업을 할 수 있었다. 다만, 6개월 차에 이뤄지는 중간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지원자에 한해 인턴십을 조기 종료할 수 있는 조건이 있었다. 노동력 착취 수준으로 인턴 일만 주구장창 하고 있다는 동기도 몇 있었지만 우리의 갓 퍼플웍스는 내 아이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제공했다. 나는 '더 늦어지기 전에 회사를 차려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영끌피(영혼까지 끌어모은 피티)를 마쳤고 결과는 '우수, 1억'이었다.
우리가 1억 원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혹시나 서류 상에 문제가 있어 합격 처리가 된 건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정부를 믿기로 했다. (합리적 의심은 이럴 때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왜 받았을까?'를 수십 번 질문하고 내린 결론은 이렇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출신 창업가 천영석님의 글을 참고했다.)
1) 이미 최소요건제품을 만들어 출시하고 몇 백 명이나마 사용자가 있었다.
-> "적어도 제품도 못(안) 만들고 포기하진 않겠군."
2) 해외 출시가 비교적 용이한 '애플리케이션 사업'이었다.
-> "그래도 하드웨어보단 수출 가능성이 좀 더 있겠지."
3) 함께 개발하고 있는 친구가 둘 있었다.
-> "이 친구들을 그대로 고용하면 고용 창출이겠군."
개발자 친구들과 주말마다 모여 앱을 만들어오던 게 드디어 빛을 발한 것이다. 이로써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며 간간히 작업을 해오던 H와, 곧 퇴사할 회사를 욕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던 J까지 모두 모여 한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초보 창업가에겐 회사를 설립하는 것, 사람을 고용해 일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정부 지원금은 어떤 식으로 나올까
나도 항상 궁금했던 이야기다.
정말로 1억이 내 통장에 꽂히는 건가?
정부 지원금을 받아 차를 바꿨느니.. 하는 괴담이 진짜인가?
지원금을 연쇄적으로 받아 사업을 이어나가는 게 가능한 건가?
정답은 모두 X다. 우선 정부 지원금은 개인 통장에 꽂히지 않는다. 대표자도 함부로 인출할 수 없는 법인 계좌에 이체가 되며, 이마저도 1억 원이 한 번에 이체되는 방식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용돈 타 쓰듯 계속 요청을 해야 한다. 보통 한 항목당 증빙 서류가 10개 가까이 필요하며 최종 이체까지는 2주 정도 걸린다. 어쩌다 증빙 서류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반려-재요청의 늪에 빠져 1달 이상 걸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처음엔 '사업을 도와주려는 건지 방해하는 건지' 싶을 정도로 페이퍼 워크가 심하다고 생각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렇게라도 허들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지원금 사냥꾼'들이 돈을 빼돌리기에 딱 좋겠구나 싶었다.
정부 지원금으로 차를 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시제품 제작에 직접적으로 도움되지 않는 구매는 대부분 반려될뿐더러(대표적인 예시가 카메라) 대표자에게는 월급조차 나오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정부 지원금과 함께 대표자에겐 가난이 찾아온다. (대신 신형 맥북을 쓸 수 있다.) 이러한 처우가 가혹하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도전조차 해보지 못하고 꺾였을 상황을 생각하면 100번 절해도 모자라다.
마지막으로 '지원금 사냥꾼'도 옛말이다. 창업 지원금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정부 과제는 중복 지원이 불가능하다.
정부 지원금 사용 후기는...
정부지원사업은 말 그대로 '지원'이기 때문에 투자와는 성격이 다르다. 지분을 내어줄 필요도 없고 수익을 돌려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눈먼 돈'이라는 비난도 종종 듣지만 이들의 진심(?)은 오히려 지원이 끝난 후 진가를 발휘한다. 나는 정부 지원금의 의도를 '성실하게 도전하고 싶은 사람이 좌절하지 않고 업을 창출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져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원이 끝난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계속 열심히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메일이 오고 후속 지원도 두 팔 걷어붙이고 해주고 있다.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에 연계해준다던지, 세무 지원사업에 연계해준다던지 끊임없이 정보를 던져준다.) 이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창업자를 지원해주고자 한다는 사실을 회사 곳간이 텅 빈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또륵)
그래서 얻은 것은
주말마다 카페에서 만나 개발하던 것을 멈추고 사무실을 얻어 정식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과연 앱을 내놓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개발 초짜 3인은 베타 버전을 업그레이드한 정식 버전을 플레이 스토어에 출시했다.
UI 디자이너 겸 기획자이던 글쓴이(본인)는 재무 관리와 디지털 마케팅까지 겸할 수 있게 되었다.
안드로이드 개발자 J는 iOS(Swift)로 주 언어 전환을 했다.
신형 맥북과 32인치 모니터로 쾌적한 환경에서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건 따로 있다.
이제부턴 무슨 일이 있어도 (자본금이 바닥나 거리에 나앉아도) 노트북, 그리고 작업할 시간만 있다면 앱을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개발까지 마쳐 출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기회가 닿는다면 계속 사업을 이어나가면 되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준비 기간을 갖고 재도전하면 될 노릇이다. 회계 장부에 올릴 순 없지만 나와 회사를 거뜬히 지탱해줄 무형 자산(a.k.a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글쓴이는 현재 스타트업 GOODNERDS에서 앱 서비스 기획과 디지털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GOODNERDS는 질문에 답을 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익명 SNS 우주챗을 개발 및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