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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류 Oct 20. 2017

뽀로로 말고 콩순이

뽀통령의 명성을 모르지 않았지만, 아이를 키우고 나서야 '뽀로로'를 봤다. 첫 돌이 지난 이후부터 유튜브 영상을 알기 시작한 딸 덕분이다. 보면 볼수록 매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율이와 함께 몇 번 시청하다가는 심란해졌다. 

[뽀로로 4기] 12화 루피의 비밀친구

뽀로로는 언제나 사고뭉치다. 영락없는 아이다. 사고는 뽀로로가 다 치고, 피해는 친구들에게 전해진다. 루피에게 사과하려는 뽀로로가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루피는 뽀로로 마음을 세심히 배려하지 않고 삐치기 일쑤다. 엔딩에 가서는 루피가 뽀로로의 진심을 알게 되고, 둘은 화해한다. 주인공이 뽀로로라서 어쩔 수 없겠지만, 루피와 패티는 주체성이 떨어지고 의존적인 성격으로 표현된다. 

[뽀로로 2기] #24 백설공주 루피

2기 24편 백성공주 루피 편도 그렇다. 백설공주가 되고 싶었던 루피는 잠든 척을 한다. 그때 뽀로로, 크롱 등이 나타나 루피를 깨우기 위한 장난을 친다. 화난 루피는 친구들을 쫓아냈고, 뒤늦게 루피가 백설공주가 되고 싶었음을 알게 된 친구들이 꽃을 들고 나타난다. 그렇게 루피 공주님은 많은 왕자님들이 있어서 행복하다며 이야기가 끝난다. 


여성 캐릭터는 늘 사건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뽀로로와 남성 캐릭터들의 행동에 따라 좌우되는 모습을 보인다. 딸이 누구보다 세상에서 주체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내게 뽀로로는 불편한 애니메이션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애니메이션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창 유행하는 폴리 시리즈도 매한가지다.


여자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애니메이션은 없을까? 무심코 율이가 즐겨보던 '엉뚤발랄 콩순이'를 몇 번 봤다. 주인공인 콩순이, 조연으로 송이, 밤이, 새요 등이 나온다. 신기한 건 콩순이 동생인 콩콩이도 여자 아이였다. 콩순이도 예쁜 공주 드레스를 입고 싶어 한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밤이 왕자를 만나 춤을 춘다. 보통 여기서 끝이 나지만, 아니었다. 불을 뿜는 용이 갑자기 등장하는데, 밤이 왕자는 허세만 부리다가 기절한다. 콩순이 공주가 용을 무찌르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콩순이는 엄마에게 이제 공주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약한 사람을 지켜주는 슈퍼 콩순이'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엉뚱발랄 콩순이와 친구들 1기 4화 공주가 되고 싶어요! 편 (English Subtitle)

율이가 영상을 보자고 조르면, 콩순이를 제안한다. 다행히 율이도 콩순이를 좋아한다. 애니메이션 하나로 성 역할 고절, 성차별 의식이 자리 잡을 리는 없다. 아빠가 이렇게 민감한 데는 이유가 있다.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였다. 체구가 작았던 나는 내성적이었다. 밖에 나가 뛰어노는 것보다 책상에 앉아서 책만 주구장창 보고 있는 게 좋았다. 당시 반장선거에 손을 들고 출마했다. 한 반에 50명 정도였는데, 후보만 7명이었다. 엎드려서 눈을 감고,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면 손을 드는 방식이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칠판에 득표 현황을 보고서는 눈물이 찔끔 흘렀다. 5표, 5등이었다. 


2학년이던 3월, 전학을 갔다. 그 학교에서도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다. 쉬는 시간에 뛰어다니면 노는 남자아이들을 보면 한심하다고 여겼다. 그때문이었을까. 전학 한 달이 지나도 남자 친구들이 주변에 없었다. 나름 큰 용기를 내고, 축구 놀이에 동참했다. 하나둘 친구들이 생겼다. 여름방학 외가댁에서 10일을 보낼 때였다. 사촌 형들과 냇가에서 즐겁게 놀았지만, 이상하게도 외할아버지 방에 있는 책들이 더 궁금했다. 꺼내 들어 덮을 때까지 쉬지 않고 읽어 내려간 책은 정주영 현대 회장의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였다. 책을 읽는 내내 심장이 펄떡펄떡 거리는 게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감동이 밀려왔다. 


"도전적으로 살자,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이런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다음 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책을, 그다음 해에는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같은 장소에서 읽었다. 그러면서 내 삶의 롤모델은 '박정희'가 되었다. 강하고 단호하고 싶었고, '여성'은 남성에 비해 뒤처진 2등 시민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5학년 때였다. 필통조차 가지고 다니지 않는 내게 연필과 지우개를 챙겨주고, 책상 청소까지 해주던 짝궁에게 화를 냈다. "왜 내 자리에 가방을 올려놔!" 여자 아이였다. 그 아이가 내게 뭐라뭐라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다 대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가 남자 말하는데 왜 말대꾸야!"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고, 결국 그 여자 아이는 울었다. 나는 미안하면서도, 근엄한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고 여기고는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다르지 않았다. 2학년 때였다. 수업시간에 장난을 치다가 교무실로 불려 갔다. 혼을 내는 여자 선생님 책상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무릎 꿇고 반성해"라는 선생님 말에 "남자는 여자 앞에서 무릎 꿇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내가 좋아했던 그 선생님 앞에 남자로서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내면화된 성차별이 드러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양쪽 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다. 그때, 우락부락한 학생부장 남자 선생님이 10m 뒤에서 달려와 나의 뺨을 두들겼다. 어른 남성의 폭력 앞에서야 나는 무릎을 꿇었고, 당시에는 분한 마음에 눈물도 뚝뚝 흘렸다.


어처구니없을뿐더러,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늘 곱씹는다. 책 한 권, 영화 한 편, 애니메이션 한 편이 한 아이의 성장에 모든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매개가 될 수는 있다고. 나의 시민권, 타인의 시민권이 공존할 때만이 자유라 부를 수 있다는 공감을 할 때가 되어야 자기 결정권이 존중받을 수 있다. 그걸 걸러내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그래서 나는 뽀로로 대신 콩순이가 더 좋다. 아들인 혁이가 나와 같은 가해자가 되지 않았으면, 율이가 나와 같은 가해자를 만났을 때 당당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그렇다고 뽀로로를 시청 금지시킬 이유는 없다. 그냥, 저런 면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보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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