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를 거뜬히 해결하는 라면, 율이가 라면맛을 알았다. 한 봉을 끓여 2/5는 율이가 먹었다. "아빠 잘 먹겠습니다."로 시작해 "아빠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로 끝났다. 오늘은 국물맛도 봤다. 세 숫가락 국물을 떠 먹고는 물에 씻은 면을 후루룩 넘긴다. 김에 싼 밥과 라면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으면서 "음~맛있어"를 연발한다.
만 3세가 되지 않은 아이와 라면을 먹으면서 고민이 없지는 않았다. MSG와 염분 덩어리를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으랴. 지금은 이혼한 삼성가 이부진 씨와 이혼 소송을 벌이던 임우재 씨는 "아이가 9살이 되어 라면을 처음 먹었다"고 했다. 라면맛도 모르고 인생을 산다는 건 정말이지 싱거운 일이다.
국민학교 2학년, 한 살 아래 동생과 밤 늦게 오는 부모님을 기다릴 때면 라면은 든든한 동반자가 됐다. 밥솥에 있는 밥 한 그릇 떠 놓고, 라면 두 봉지를 꺼내 만든 식사에서 불만이 나오기는 어려운 일이다. 한 살 어린 동생의 배고픔을 달래줄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해지곤 했다. 고작 한 살 많은 오빠가 엄마의 대체제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배고파서 엄마 찾는 일은 없었다.
한둘이 아닌 친구 예닐곱명을 우르르 끌고 집으로 와도, 라면이 있어 엄마 일손을 덜 수 있었다. 큰솥에다 라면 다섯봉을 털어넣고, 계란 두어개 풀어 놓은 국물에 밥 말아 먹고는 밖에 나가 해가 질 때까지 뛰어놀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1평짜리 고시원에서 서울 생활하던 시절에도 라면은 든든한 동반자였다. 새로고침 한다고 통장 잔고는 늘어나지 않고, 1평짜리 고시원에서 된장찌개를 끌여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컵라면 하나에 소주 한 병을 밀어넣고 나면 서글픔도 잠시 사라지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잠이 들었다.
입으로 면을 후루룩 빨아올렸다고 기뻐하는 율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라면맛을 알아간다는 것은 불어터져도 안 되고, 설익혀도 안 되는 적당하게 끓을 줄 아는 것이다.
라면맛을 알아간다는 것은 한그릇에 배부를 수 있는 즐거움을 아는 것이다.
편안하고 쉽지만, 행복을 주는 보통 사람처럼 살아가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