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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트린 Mar 24. 2019

사는 게 힘들어도, 산책은 계속된다


꽤 여러 번을 만난 후에도 백구는 자기 몸에 손대는 걸 싫어했다. 가끔 빠진 털을 떼어주려고 손을 가까이 대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붙임성도 없고 나를 좋아하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산책만은 정말 좋아해서 내가 나타나면 발사 준비를 하듯 헥헥거렸다.


우리 둘 다 산책이 익숙지 않았기에 코스는 되도록 인적이 드문 골목으 잡았다. 예쁘구나, 인사를 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지 않은 덩치에 별로 깨끗해 보이지 않는 생김새를 보고 피해 가는 사람도 있었다.

보통은 사람이 없는 시간, 근처 성당 마당 겸 주차장에서 쉬며 간식을 먹는 것으로 산책을 마무리했다. 때문에 백구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지면 으레 성당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가끔 미사가 끝나거나 시작하는 시간, 오가는 신자 많은 데서 고집을 피워 사람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흰순할먼(산책을 하면서 내가 백구를 부르던 이름이다)과 산책을 시작한 지 5~6개월쯤 지났을 무렵, 가구점이 자주 문을 닫았다. 처음엔 사장님의 개인 사정으로만 여기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흰순할먼의 밥그릇이 비거나 물그릇이 더러워져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비가 온 다음 날 가보면 사료가 퉁퉁 불어 물에 떠 있기도 했다.


어느 주말, 일부러 찾아가 만난 사장님이 뜻밖의 소식을 알려왔다. 가게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 그런데 백구도 데려가시는 거죠?"

불안감을 감춘 나의 물음에, 사장님은 방법을 찾고 있지만 아무래도 힘들것 같다며 키워줄 사람을 수소문하고 있다고 했다.

열네 살이나 된 늙은 개를 데려갈 사람이 있을까?

저렇게 붙임성도 없고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 개를?


당연히도 흰순할먼을 데려가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해듣기로는 개장수가 팔라고 했다는데 사장님이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것만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리고 12월, 흰순할먼을 두고 가게가 비워졌다. 명도까지는 시간이 걸려 완전히 비운 것은 아니라 했다. 사장님은 바람이 덜 드는 쪽으로 흰순할먼의 집을 옮겨놓고는 자신도 매일 들러 밥을 줄 테고 근처에서 고깃집을 하는 지인도 자주 들여다볼 거라고 했다.

잘 안 돼서 가는 사장님의 사정도 딱했지만 버림받듯 혼자 남은 흰순할 생각에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속에서 많은 말들이 끓어올랐다. 그러나 다들 사람이 먼저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늙은 개 걱정을 입밖에 내봐야 별난 아줌마 취급이나 받을 게 뻔했다.


매서운 추위, 사람들이 던져주고 간 음식물, 개집 주위에 얼어붙은 대소변, 춥고 쓸쓸했던 성탄절과 성당의 불빛이 유독 기억에 남는 겨울이었다. 길에서 살아 있는 것이 용하다 싶을 만큼 추운 날들이 이어졌고 나는 날마다, 하루종일 이 시간을 기다렸을 흰순할먼에게 따뜻한 물을 먹이고 짧은 산책에 나섰다. 그럴 때면 어쩐지 내가 이 늙은 개의 마지막 의지처가 된 것 같은 생각에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책임감과 두려움을 느꼈다. (계속)



  * <이웃집 늙은 개의 첫 산책>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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