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는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허기가 밀려왔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계란 3개에 고구마 1개, 도시락과 컵라면 1개를 먹었으니 한나절 먹은 것 치곤 적은 양이 아니었다. 평소에도 옆에 앉은 동료는 내가 먹는 걸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이렇게 많이 먹고도 퇴근하는 길에 허기가 밀려와 식당에 들러 배를 채우고 가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 생각이 들면 계속해서 이게 진짜 배고픔인지, 뭔가 해소해야 할 욕구 불만이 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운동도 못 가고 일상이 단조로우니 온통 먹을 생각만 나는 건가? 오늘 회사에서 화나는 일 있었나? 몸이 어디가 안 좋은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이럴 때 나는 뭐가 좀 씹고 싶은 것이다.
원래 고기를 안 좋아해서 육고기를 안 먹으면서도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다른 사람과 밥 먹을 때 메뉴가 고민된다거나 가족 식사에 고기가 덜 올라가는 것이 문제였지 나 스스로 고기가 먹고 싶은 걸 억지로 참은 적은 없다. 물론 가끔 생각나는 음식은 있다. 바로 교촌치킨과 비엔나 소세지다. 치킨은 교촌치킨만 시켜 먹을 정도로 원래부터 그 달고 짭쪼름한 양념맛을 좋아했으니 그렇다 치고, 별로 좋아하지 않던 소세지가 생각나는 건 좀 의외였다. 하지만 속이 헛헛할 때나, 뭐가 먹고 싶을 때 가끔은 햄버거빵 사이에서 톡 터지는 소세지의 씹는 맛은 가끔씩 미치도록 그립다.
후배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씹는 욕망이 해소되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먹는 즐거움에 씹는 즐거움이 있었구나. 고기는 씹어야 맛이지, 라는 말도 있었네. 고기가 아니더라도 씹는 즐거움은 잡식동물인 인간의 본능인데 그걸 해소하지 못하니 주기적으로 심한 허기를 느꼈던 모양이다.
고기를 안 먹기 시작하면서 육식을 유별나게 좋아하던 남편과 은근 실랑이를 많이 했다. 지금은 주말 부부로 사니 남편은 나 신경 안 쓰고 먹고 싶은 고기를 실컷 먹고 살겠지. 매일 저녁 남편은 흡족한 식사를 한 듯 여유 넘치는 목소리로 오늘 저녁은 뭐 먹었어? 하고 묻는다. 먹는 타령 참 지겹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 뭐 먹었는지 챙겨주는 남편이 고맙고 그립다. 오늘도 퇴근시간에 맞추어 전화한 남편이 묻는다. 오늘 저녁엔 뭐 먹을거야?
글쎄.. 오늘 저녁엔 뭘 먹을까? 이렇게 헛헛한 날엔 굴소스에 느타리버섯과 양배추를 볶아서 쫄깃쫄깃 아삭아삭 씹는 맛을 즐겨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