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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캣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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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트린 Jan 17. 2021

퇴근길, 강아지가 있는 그 집

캣맘 일기

하루 출근, 하루 재택근무를 한 지 두 달째...


강추위가 시작된 이후 회사에서 돌보던 길냥이 걱정에 재택근무일엔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에 가서 따뜻한 물과 사료를 보충해 주고 온다.


30분 남짓 걸리는 거리를 출근할 때는 자유로, 퇴근할 때는 지름길을 이용하다 보니 출퇴근할 때의 풍경이 다르다.


퇴근할 때 지나는 길에는 산아래 멋진 전원마을이 펼쳐진 곳도 있지만 이렇게 오래도록 손보지 않은 듯 보이는 옛날 집도 있다.


이 집엔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이 사시는 것 같은데 마당인지 길인지 모를 공간에 다 쓰러져 가는 개집이 있고 그 옆에 작은 개 한 마리가 묶여 있다.



태어나서 목욕 한번 못해봤을 것 같은 이 아이는 꾀죄죄한 몰골이지만 귀여운 얼굴로 추우나 더우나 길에 나와 있어서 이곳을 지날 때마다 잘 있나 지켜보게 다. 아이가 보이지 않는 날이면 괜히 걱정이 돼서 다음 날 다시 볼 때까지 마음이 쓰이기도 다.


지난주 날이 무지 춥던 재택근무 날, 여느날처럼 회사에 잠깐 들러 길냥이 밥을 챙기고  돌아가는데 이 아이가 또 이렇게 나와 있었다.


'이렇게 추운 날은 집 안에 좀 들여놓지.'


추운 곳에 서 있는 아이가 안쓰러워 길냥이 주고 남은 따뜻한 물과 닭가슴살이라도 나눠줄까 하여 나도 모르게 차를 세웠다. 전부터 한 번쯤 가까이 가보고 싶었는데, 한 번 내리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늘 망설이던 일이었다.


마침 대문 앞에는 주인 할아버지가 나와 계셨고, 그 옆에는 가족인지 막 출발하는 차도 한 대 보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할아버지도 강아지도 무슨 일이냐는 듯 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저..."


엉거주춤 물과 스티로폼 박스를 들고 쭈볏거리며 입을 떼는데 개집 옆에 보이는 고양이 겨울집과 길냥이 한 녀석..


그러고 보니 길냥이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아래쪽에는 꼬물꼬물한 아깽이 몇 마리가 사람이 가까이 오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밥과 간식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려다보며 보초를 서는 이 녀석은 어미인가?


"어머 여기 고양이들도 있네요."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감탄을 쏟아내는 나에게 할아버지는 얘기 어미고, 얘네들이 이번에 낳은 아이들이며, 저쪽 구석에서 얼쩡거리는 아이는 이 어미가 지난번에 낳은 아이인데 여기 와서 눈치껏 밥을 먹고 간다고 설명을 해주셨다.


그러면서 금방 떠난 차의 주인이 고맙게도 매일 찾아와 냥이들 밥과 강아지 간식을 정성스럽게 챙기간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그 말을 듣는데 지나면서 이 허름한 집에 사는 강아지를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로 보고 걱정하던 내 생각이 조금 부끄럽게 생각됐다. 동시에 이 길을 지나는 사람 중에 저 강아지가 눈에 밟혀 안쓰러운 마음을 품었던 이가 나만이 아니었음 확인한 것 같아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캣맘으로 살면서 가끔 내가 너무 별난가, 예민한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할 때가 있다. 길에서 동물을 보는 것이 많이 괴롭고 특히 내 눈에 불쌍하게 보이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괴로워 이제는 <동물농장>이란 프로그램도 못 보는 지경이다.


하지만 내 눈에 초라하고 지저분해 보여도 집 한 켠을 고양이 가족에게 내주신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매일 와서 챙겨주고 가신다는 분을 생각하면 이제는 이 퇴근길을 마음 편히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내 손에 들려 있는 스티로폼 박스를 보고 할아버지가 뭐냐고 물으셨다.


"강아지 앉을 데가 없는 것 같아서 이거라도 깔고 앉으라고 가져왔어요."


"개집에 볏짚까지 깔아둬서 따뜻해요, 걱정 말아요."



지나면서 볼 때는 거적때 하나 얹어놓은 것 같던 개집에도 이렇게 집과 이불이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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