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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Sep 08. 2020

새날을 맞이하는 조건

반복되는 일상, 시간 감옥에서 탈츨하는 두 가지 방법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시간은 어김없이 2월 2일 아침 여섯 시를 가리킨다. 어제의 상황이 오늘 똑같이 펼쳐지고, 오늘의 경험은 내일 다시 반복되는 세계에 갇혀버린 거다. 다만 이 세계에서 같은 날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 영화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 속 주인공 필(Phil)이다.


같은 날이 무한정 되풀이되는 끔찍한 악몽에 직면해 좌절과 냉소의 시간을 보내던 주인공 필은 음독, 권총자살, 투신자살, 감전사 등 수많은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사망 후에도 내일은 찾아오고 눈을 뜨면 어제의 반복이다. 그가 속한 세계는 죽음도 허락하지 않는다. 완벽한 시간의 감옥에 갇힌 것이다.


매년 2월 2일 ‘그라운드 호그 데이’가 오면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마멋(그라운드호그)이라는 동물이 겨울잠을 자던 굴에서 나오는 움직임을 보고 봄이 왔다는 신호를 예측하던 관습을 기념한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의 계절적 배경인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변곡점인 그라운드호그 데이는 곧 주인공 인생의 드라마틱한 변환을 암시하고 있다.


영화 속 필의 직업은 기상 캐스터인데 그가 다루는 대상이 다름 아닌 매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날씨라는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사실 그는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고 자신이 맡은 일은 해치워 버려야 할 대상으로 여기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무리 죽어도 다시 되살아나 어제와 똑같은 일상에 되돌려지는 저주를 알아차린 필. 그는 대체 무엇을 시도해 어디로 탈출해야 하는 것일까? 관객은 주인공이 처한 처절한 난감함에 깊이 빠져들게 다.  
 
극도의 무료함과 허무에 빠져 예측 가능한 뻔한 삶에서 빠져나올 출구 찾기를 포기하려던 주인공은 구걸하던 어느 노인의 죽음을 막아 보기 위해 갖은 애를 써 보지만, 갖은 노력으로도 결국 노인의 목숨을 구하지는 못한다. 죽음까지는 뒤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을 겪은 후 그는 변했다. 이제껏 한 번도 해 본 적 없던 낯설고 생경한 일을 시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누군가를 돕는 노력을 한다. 필은 타이어가 펑크나 곤란해하던 노부인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헤어질 뻔한 연인이 결혼할 수 있게 만들고, 나무에서 떨어지던 아이를 받아주고, 스테이크가 목에 걸려 질식할 위기에 처한 노인을 구해준다.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선행을 베풀며 많은 사람들을 돕는다.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덜어주려는 선한 행동을 통해 일상에서 기쁨을 경험하게 된 필은 이제 보이지 않았던 세상에 눈뜬다. 항상 옆에 있었던 직장 동료에게서 그 전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가 늘 불평하고 싫어했던 직장 일과 동급으로 여겼던 대상이자 동료였던 그녀 말이다. 마침내 그녀와 사랑을 나눈 바로 그날 주인공 필은 드디어 완전히 새로운 날, 즉 2월 3일의 아침을 맞이한다. 악몽 같던 2월 2일은 완벽한 과거가 되었다. 드디어 시간이란 감옥의 빗장을 스스로 열고 나온 것이다.


시간 감옥의 탈출을 도운 두가지 힌트: 이타심과 배움


1993년에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개봉되었던 이 영화는 내가 20대였던 대학교 시절의 영화이니 20년도 족히 넘은 영화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영화 중 하나다. 영화를 처음 봤던 당시에는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날에 비로소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는 '그래 탈출의 열쇠는 사랑이었어' 하며 냉소적 인간의 전형인 필이 마침내 얻은 사랑이 이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제목은 정말 이지 신중하게 붙여야 한다는 교훈.) 그래서 일견 이 영화는 '사랑은 모든 것을 해결하고 완성한다'는 뻔한 헐리우드적 공식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치 고대 그리스 비극의 절정 부분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라는 기계 장치의 신이 등장해 인간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단번에 종결짓는 것과 같이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본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수없이 되풀이하는 날 속에서 변화를 이루어 가는 단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빠져나올 수 없는 시간의 블랙홀이라는 장치의 상징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다. 결국 주인공에게 새로운 날을 허락한 통로는 이타심과 배움이라는 두 가지 매개가 작용했음을 알게 되었다.
 
필은 카페에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곡을 듣고 어느 날 충동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기로 결심하는데 그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라는 곡이었다. 영화 초반부에 도레미 밖에는 모르던 그는 반복 연습을 통해 이 곡을 피아니스트 수준으로 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매일 쉬지 않고 꾸준한 연습을 통해 연마되는 기술의 경지를 보여준다. 매일하는 수련은 탁월함을 낳는 반복의 힘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우리가 선택한 일에 대한 몰입과 열정은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반복된 노동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켜 내는 우리 주변 속 생활의 달인은 얼마나 깊은 감동을 주는가!


아울러 남을 돕는 행위는 주인공을 진정한 사랑으로 이끌었던 촉매제가 되어 주었다. 늘 자기 자신만을 앞세우고 매사에 불만이 가득한 그였지만, 타인의 행복을 돕는 경험을 통해 어느 새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필이 행한 이타심은 타인에게 그의 매력을 알아차리는 기회를 선사했고, 그 자신에게는 평범한 일상에서 감사할 줄 아는 능력을 허락했다.


이타심과 배움은 죽어있는 삶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살아있는 죽음(death in life)에서 떠나는 유일한 방법은 매순간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며 사는 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무의미한 시간의 덫, 목적을 상실한 일상의 감옥에 갇힌 자들이여, 네가 손에 쥔 탈출의 열쇠는 무엇인가? 라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탈출은 무모한 것일 뿐, 우리가 떠나올 수 있는 곳은 우리 자신뿐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과거를 떠나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은 진정한 배움과 이타적 행동을 통해 시도될 법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다시는 시간의 감옥에 갇히지 않고 미래의 새 날을 불러오기 위해 오늘은 또 어떠한 시도를 해 나가고 있을까?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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