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이름이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있다.
크리스마스를 기념? 으로 둘째까지 볼 수 있는 공연을 하나 찾아 예매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초등학생 아이가 크리스마스에 보고 싶은 공연이란건 없다. 집에서 게임하는게 최고의 행복이) 긴긴밤이라는 국내 청소년 소설을 판소리 극으로 연출한 창작공연이었다. 공연전에 책을 샀다. 읽고 가는 것이 좋을까? 읽지 않고 처음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을까?
작가 이름이 루리라고 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외국 작가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국내 작가의 유명한 어린이 소설이었다. 그림도 직접 그렸다. 묘한 색감의 코뿔소는 예전에 서울대공원에서 종종 보던 하얀 코뿔소를 생각나게 한다. 흰 코뿔소의 그 바위 같은 모습은 참 인상깊었는데, 어느날 뉴스에 코뿔소가 탈출하다가 죽었다는 소식도 보았던 기억이난다. 이 작가가 그 뉴스를 보고 소설을 썼을까?
여튼, 이런 저런 생각을 갖고 소설을 한 반쯤? 읽고 공연을 보러 갔다. 날씨는 추웠지만 화창했고, 나들이 하기 좋은 날이다. 비슷한 생각을 한 이런 저런 다른 관객들도 하나 둘 모인다. 그래도 이런게 메이져 공연은 아니라, 그렇게 붐비거나 빡빡하지 않다. 그래서 널널하게 볼 수 있어서 좋다.
잘은 모르지만, 서울남산국악당은 조명과 사운드가 참 좋다.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지만, 좋은 공연을 하기엔 오히려 매우 좋은 규모와 시설이라, 여기서 하는 공연은 한번 씩 찾아보게 된다. 덤으로 남산 뷰와 한옥마을 구경도 좋고, 오래된 충무로 거리의 숨어있는 맛집들도 꽤 있다.
긴긴밤
사연 많은 코뿔소의 이야기다. 코끼리들 사이에서 살다가, 자연으로 가서 가족도 만들다 커다란 불행과 어려움들, 그리고 만나는 다른 인연, 코끼리가 해준 것 처럼 또 다른 펭귄을 키워내고, 그 펭귄은 다시 자신이 되어 가고.
어찌보면 대단한 내용이 없지만, 큰 줄기엔 내가 나를 찾아가는 과정들이다. 그 과정에서 한번 씩 용기를 내기도 한다.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말도 안되는 불행을 겪기도 한다. 그러다 또 우연이 겹치기도 하고, 새로운 인연이 만나지고 ..
볼 때는 잘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많은 것을 꾹꾹 눌러서 담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가끔은 판소리로, 가끔은 우수꽝스러운 연극으로 아프리카의 초원과 바다를 조명하나로 잘 그려낸다. 사이사이 연주자들의 적절한 연주도 훌륭하다. 이런게 요즘 공연들은 모두 멋있다.
사실, 감기 증세로 마스크를 쓰고 컨디션도 안좋을 채로 봤던 공연이라 힘들기도 했지만 (옆에서 정말 힘들어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힘든 티를 낼 수는 없었다. ) 지나고 보면 또 다른 기억으로 자리잡는다. 다시 한번 찬찬히 책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