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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Dec 16. 2024

눈 오는 날을 좋아하나요?

10~20센티 이상의 많은 눈이 예상된다는 일기예보를 들으면서도 그럴 리가 없다고 반신반의했다. 첫눈은 항상 흐지부지 내려와서 쌓이는 일도 별로 없어 운 좋은 사람만이 목격하는 것이 아니던가. 게다가 곧잘 어긋나는 일기 예보를 믿지 않은 지도 한참이 되었기에 10~20센티라는 어마어마한 적설량을 운운하는 소리를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남아있었나 보다. 따듯한 이불속 공기를 박차고 일어나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아직은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았다. 노랗고 붉은 단풍나무가 무거운 눈송이를 힘겹게 받들고 있고 도로 위에 차들은 살금살금 바퀴를 굴리고 있었다. 아직 누구의 흔적도 남지 않은 눈밭 위로 여전히 눈은 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웅크리고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눈발을 쫓으면서 멍하니 쳐다보다가 갑자기 다들 어떻게 출근할까 하는 걱정이 불쑥 올라왔다.


둥근 해가 떠서 반가운 마음보다는 저 미친 해가 오늘도 또 떴냐며 투덜대고 화를 내는 어른이 된 지금은, 눈이 와서 마냥 반가운 마음 대신 길이 막히고 거리가 미끄러워지면 약속 시간에 늦어질 테고,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거라는 불평불만이 먼저 머릿속에 자리했다.  

그냥 오늘은 쉴까, 따듯한 집에서 책 읽고 차 마시고 눈 구경하고 얼마나 환상적인 시간이겠어?!

고작 두시간짜리 강의를 수강하러 나가면서도 두어 번의 망설임이 있었다. 겨우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고 아직도 잦아들지 않고 맹렬히 퍼붓는 눈발을 보면서 우산과 장갑을 챙긴다. 행여나 미끄러질까 천천히 걸어 나가면서 들이마시는 눈 오는 날의 공기는 생각보다 신선하고 따듯한 느낌이다. 아직 대여섯 개 남은 주황색의 감이 눈을 맞아 더 도드라져 보였다.


모퉁이를 돌아 아파트 단지를 걸어가는데 아직 미처 완성하지 못한 눈사람 두 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전에 서둘러 만들어놓은 눈사람이 삐딱하게 서 있다. 학교에 가야 하는 몸이지만 눈사람도 꼭 만들어놓고 싶었을 그들의 마음이 담뿍 느껴졌다. 겨우 무릎높이밖에 안 되고, 눈도 코도 입도 없이 하얗고 동그란 눈덩이 두 개를 붙여놓은 것에 불과한 것을 보면서 자꾸만 상상하게 되었다. 얼마나 급한 마음이었을지, 얼마나 들뜨는 마음이었을지, 얼마나 예쁜 마음이었을지.......


얘들아, 우리 이거 해보자.

**야, 내일 또 놀자.

엄마, 나 내일도 놀이터에 꼭 나올 거야.


아이들은 새로운 다짐과 약속과 기대를 항상 품고 있다. 그래서 활기가 넘치고 사람을 쉽게 따르고 자신을 잘 내보이며 쓸데없는 생각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이 먹은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제, '현재를 즐기는 일'을 잘 해내는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보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 없는 행동과 움직임이 그들의 무해함을 완성한다.


혹독한 추위나 극심한 더위가 아니라면 아이들은 언제나 놀이터에 나와 공을 차고 소리 지르고 하릴없이 뒤를 쫓아다니며 웃고 떠든다. 그래서 아이들의 소리가 멀리서나마 들리면 오늘은 죽을 만큼 덥거나 추운 날은 아닐 거라고, 조금 힘내서 밖으로 나가봐도 되겠다고 자신을 독려하게 되었다. 어느새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바닥으로 가라앉은 마음을 깨우는 것이었다. 재고 따지고 계산하다가 지쳐서 체념하면서 집안으로 자신을 가두는 날이면 문득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가볍게 이끌려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내디딘 한걸음이 중요한 시작되기도 한다.


강아지 털같이, 솜사탕같이, 차갑지만 따듯하게 하늘하늘 내리는 눈송이가 온 세상을 가득 메우던 그날, 현명한 아이들이 온몸으로 첫눈을 맞이하던 그날, 부쩍 추워진 날씨 탓에 들리지 않던 그들의 목소리(흔적)를 다시 한번 반가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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