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붙어 있다면 살아내야 하는 하루는 어김없이 주어지고야 만다.
가만히 숨만 쉬고 누워만 있는 것으로도 누군가의 하루는 마감되지만 어떤 이는 일어나는 순간부터 몸을 움직이는 체력적인 쓰임을 다하고, 원해서든 필요에 의해서든 만나야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육체와 정신의 쓰임을 다한 후에야 하루를 마감 할 수 있다.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고통을 견디어 하루를 마감하고 다음날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쉽사리 앞당겨야 할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 찾아오고야 만다는 절대 진리를 떠올리든 떠올리지 않든 우리는 어느 한순간 모든 것들에게 안녕을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죽음을 아주 가까이 스스로 끌어 와야만 하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도 늘 죽음과 친한 사이라고 할 수 있는 우울의 기운을 mehr oder weniger 치명적이지 않은 수준에서 불치의 병처럼 지니고 있는 사람이므로.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리고 그러한 소식은 다시금 죽음을 떠올리게 만든다. 말로 글로 표현해 내기에 너무나도 어려운(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죽음의 기운과 어두움의 기운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살아 있기로 하는 결정 아닌 결정이 전혀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 생각이 결국 증폭되어 죽음을 명령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상태에 빠져드는 것이 지속되거나 너무나 잦은 빈도로 삶을 잠식해 버렸을 때. 그 순간 죽음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죽음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노력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을 테지. 이미 노력이라는 힘겨운 단어는 그들의 것이 아닌 것이 될 때 죽음이 가깝게 느껴지는 것일 테니까.
가장 우울했던 그때. 그래도 살아내야 했기에 그 당시의 나에게는 가장 어려웠던 노력이라는 것을 끌어올려야 했던 시절. 죽음 비슷한 것을 떠올리게 될까 봐 마구잡이로 나의 의식 어딘가를 꾹꾹 누르던.
밝아 보이는. 다 가진것 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혼자 외롭게 어딘가에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노력을 다해서 살아 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죽음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서 가장 하기 힘든 일. 그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