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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은나의것 Apr 28. 2021

배설의 글쓰기를 멈추기 위해

너의 질투를 용서하고자 해

나는 내 안에 글로 써 내려가야 할 수많은 이야기가 가득 차 있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얽히고설켜 있다거나 때로는 오래된 기억들이어서 명확하지 않은 것들을 끄집어내고 잘 다듬으면 의미 있는 글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


그래서 일단 노트북에 그럴싸한 제목을 붙여두고 자전적 이야기가 되어야 할지 소설이 되어야 할지 모르는 글들을 아무렇게나 휘갈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모든 이야기가 단지 배설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고 그것은 개운치 않은 기분을 남기곤 했다. 글 속에는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에대한 원망이 가득했고 나에게 상처를 준 이를 할퀴고 싶은 마음이 앞서 스스로 헛발짓하는 듯한 느낌의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좋은 점은 있었다. 나는 그렇게 배설과 같은 글쓰기를 하면서 마음속에 어지럽게 '관념' 적으로만 떠다니던 '미움', '원망' 같은 것들을 어쩔 수 없이 한 자 한 자씩 글로 정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미성숙함을, 못난 마음들을 들여다 보게 했다. 나름 치유의 글쓰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단순히 더럽고 냄새나는 글만 써 내린 것은 아닌 것이다.


나는 유난히 질투의 대상이 되는 것에 예민했었던 것 같다. 나의 조금은 독특한 이력들은 늘 그 독특함 만큼 눈에 띄는 것이었고 고도의 경쟁 사회인 한국에서 그런 것들을 가진 자는 질투의 대상으로 등극하기 딱 좋기도 했다. 지금도 그와 같은 글을 내가 스스로 쓰다니...나는 나를 잡아 죽일 듯 미워하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일점 차이로 등수가 갈리고 가장 친한 친구조차 넘고 밟아야 할 경쟁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치열한 시공간 안에서 발버둥 치며 지낸 그 시절이 나에게는 두고두고 상처가 되었다. 지금이야 7:2:1의 원칙을 알게 되어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면 편해졌지만 그 당시엔 너무 어리기만 해서 상처 받기 바빴다. 칠대 이대 의 법칙이라 함은 7명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2명은 내가 뭘 해도 미워하고 1명은 내가 뭘 해도 좋아한다(2와 1은 반대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악플을 달고 쫒아다니고 미워하던 그 한 놈(년일 거다 아마)을 나 역시도 그렇게 집요하게 미워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닐까. 그 누구도 그 법칙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 '질투'에서 비롯됐을 미움이 오히려 관념적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했다. 우리 둘째를 보면서다. 셋째가 부모의 절대적인 귀여움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둘째는 셋째를 '근본적으로' 질투하므로 여러 가지 미움의 말과 행동들을 내뱉는다. 자기가 '노력' '따위로 어찌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기에 더 그 '질투'는 원초적인 모양새다.


그가 미워한 나는 그가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가졌기에 더욱 밉고 불편한 것이었고 그래서 그렇게 숨어서 어떻게든 나를 공격하고 찍어 내려보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 그냥 용서하자. 내가 내 아이를 이해하듯이.


이렇게 마음껏 비워내고 움츠러든 마음을 햇살 아래 펼쳐두고 잘 말리고 소독시키고 싶다. 이제 그만 이야기해도 된다고 스스로 느껴질 때까지 마음껏 배설의 글쓰기를 '나만의 일기장'에 쓰고 난 후.

동네에 사과 과수원이 펼쳐져 있고 그 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책길이다. 1960년 동네 교회에서 세워둔 이 십자가 상을 지나면서 잠시 조용한 마음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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