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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Sep 13. 2023

입 밖으로 꺼낸다고 사랑이 되는 건 아닌데

230114 오후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절대 내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같은 대목에서 울고 웃고,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해도 너와 나는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렇게 특별하다 느끼는 순간에도 너와 나를 묶을 수 있는 건 겨우 ‘우리’라는 단어일 뿐이다.


내가 걔에게 이토록 자주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건 내가 걔를 다 알지 못해서 가능한 일이다. 걔가 어떤 순간에 가장 최악인지, 자주 나를 실망시키는 포인트는 무엇인지 그런 걸 다 알고서도 그렇게 설레고 벅찬 마음으로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 난 그렇게 훌륭한 인간이 아니라 당장에 그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참으로 다행인 건 아직 나에게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에너지는 또 한번 벅찬 마음으로 사랑을 전할 때 생긴다. 그래서 사랑을 말 할 타이밍이 전혀 아닌 순간에도 일단 입 밖으로 그 단어를 꺼내 놓고 본다. 자꾸 말을 하다보면 아무튼 그 순간 난 또 사랑을 하게 되니까.


라고 8개월 전의 나는 사랑을 정의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알게된 사랑은 그런 게 아니었다. 들인 시간, 에너지가 무색할만큼 나는 자주 사랑이라는 단어와 멀어져있었다. 어떤 날엔 애인에게 ’사랑해‘라고 말한지 단 5분만에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고, 그런 단어가 다 소용없어질만큼 우울해지기도 했다.


일단 얻은 결론은 ‘글쎄...’ 라는 심심한 대답이 전부다. 다만, 사랑이 최악인 가성비를 자랑하는 행위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래도 이런 재미없는 글을 남기도록 만드는 것 역시 사랑이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보면 뭐가됐든 선명한 한 문장 정도는 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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