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그래디 헨드릭스 저
책은 당신 자신을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쓰고, 본인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하여.
―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그래디 헨드릭스 저
오랜만에 너무 흥미진진하고 뒷부분이 궁금해서, 잠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눈을 부릅뜨고 계속 읽고 싶은 책을 만났다. 잠에 대한 집착이 상당한 내게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럴 수밖에.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책이 아니니까. 책의 제목은 바로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이하 "호러북클럽">. 짐작할 수 있듯 호러 장르이고, 표지부터 상큼발랄한 이 책은 그에 걸맞는 유머 감각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무서운 동시에 재미있으면서도 예상치 못한 내용 전개로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귀한 책이라는 말이다.
간략한 줄거리는 이와 같다. 한때 간호사였던 주인공 퍼트리샤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주부이다. 그는 늘 그렇듯 남편 카터의 뒤치닥꺼리를 하다가 불현듯 깨닫는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있다고. 그리고 합류하게 된 북클럽에서 퍼트리샤와 다른 주부들은 난항을 겪는다. 정신없는 일과 속 진지한 책들을 소화하지 못한 퍼트리샤는 다른 주부들과 함께 튕겨져 나와 새로운 북클럽을 만든다. 바로 호러 장르만 읽는 북클럽이다. 그때부터 퍼트리샤는 책을 빠뜨리지 않고 읽고, 토론에도 성실하게―어쩌면 심하게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던 어느날, 매력적인 외양의 제임스 해리스라는 인물이 새롭게 이사를 오는데, 수상쩍은 데가 한 두군데가 아니다. 그에게 흠뻑 빠져든 다른 이웃들과 달리, 퍼트리샤는 그가 위험한 인물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를 믿어줄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이 불리한 조건 속에서 어떻게 수상한 남자를 처단하고 아이들을 위험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까?
이 책은 저자의 서문부터 강렬하다. 책 전체에 어떤 식의 내용 전개가 이루어질지 짐작 가능한 대목이며, 저자가 주부와 그들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와 달리 어떻게 전쟁같은 하루하루를 살아남고 있는지에 대한 어떤 이해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덕분에 소설은 더욱 현실성을 갖출 수 있었고, 때문에 독자로서 더욱 몰입하고, 주인공과 그들의 친구들을 응원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이 온갖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을지, 있다면 어떤 방식이 될지 더욱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머니는 북클럽에 나가는 주부였다. 어머니와 그 친구들은 늘 허드렛일을 하고, 운전을 담당하고, 어린 우리가 보기에 말도 안 되는 규칙을 강요했다. 어머니들은 그저 한 무리의 어중이처럼 보일 뿐이었다. 이제 나는 안다. 당시의 내가 존재조차 모르던 일들을 그들이 얼마나 많이 감당하고 있었는지. 그들이 궂은일을 도맡은 덕분에 우리는 망각 속에서 흐르듯 살아갈 수 있었다. 그게 거래 조건이었다. 부모로서 고통은 당신이 견딘다, 당신의 아이들은 그럴 필요가 없도록. (생략)
나는 이 소설에서 자신의 식욕을 제외하고 그 어떤 책임을 질 일이 없는 남자와 삶 전체가 끝없는 책임으로 점철된 여자들을 싸움 붙이고 싶었다. 드라큘라와 내 어머니를 싸움 붙이고 싶었다.
이제부터 보게 되겠지만, 그건 공평한 싸움이 아니다.
이 책은 '북클럽을 위한 독서 가이드'까지 부록으로 제시하는데, 이 역시도 내용상 빼먹을 수 없는 소중한 일부분이다. 여기에 여덟번째 발제문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물론 이 작품의 중심에는 명백한 괴물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공포와 두려움과 불안이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 또한 배운다. 작중에 등장하는 또다른 유형의 괴물이 있는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무서운 요소는 무엇이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 이 책에는 또다른 괴물이 있다. 어쩌면 제임스 해리스처럼 극명하게 드러나있지 않으며 다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또 뚝딱 해치워 납골당에 넣어둘 수도 없기에 더 위험천만한 괴물, 바로 가부장제라는 괴물이다. 간호사였던 퍼트리샤가 스스로를 소개할 때마다 버벅이며 간호사'였'다고, 아니, 현재에도 엄연한 간호사라고 얼버무리게 되는 것, 남편이 다른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게 되는 것과, 제임스 해리스가 위험 인물이라는 증거를 들이밀 때마다 무시당하고 말할 수 없도록, 불안한 감정을 표현하거나 느끼지도 못하도록 억압받고, 심지어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이유. 애초에 올드 빌리지의 주부들이 호러 북클럽이라는 미명 하에 서로 뭉치고 시간을 보내게 된, 연대할 수밖에 없게 된 이유―그들은 너무나 철저히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이렇게 절벽으로까지 몰아낸 것은 다름아닌 그들의 남편들이었다.
<호러북클럽>은 식스마일이라는, 흑인들이 거주하는 동네를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는 곳으로 설정함으로써 또다른 차별을 조명한다. 그곳은 실종 사건이 벌어져도 경찰들이 그러려니 넘겨짚는 곳이며, 어머니가 아이를 빼앗기는 곳, 보호할 수 없는 곳이다. 식스마일에 거주하는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미스 그린은 올드 빌리지를 위해 일하고, 심지어 위험 상황에서도 온 몸을 바쳐 큰 고통을 겪었지만, 반대로 그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그곳에는 그들을 위해 맞서 싸워줄 사람이 없었다. 올드빌리지의 여성들 역시 살아남기 위하여 각자의 싸움을 치러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 위기 상황에서 그들은 서로를 보았고, 함께 손을 잡고 이 위험을 동네에서 몰아내고자 했다. 그들은 지켜야 할 아이들이 있는 어머니였으며, 겉으로 보고 쉽게 판단하는 어리석은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충분히 강인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은 매일 전투를 치르며 살아남는 생존자들이었고, 스스로 강인해져야만 하는 사랑을 내면에 품고 있었다.
나는 저자가 당연히 여성일 것으로 생각했고, 아닌 줄 알게 된 후에도 자꾸만 착각했다.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어야만 하는 어려움과 위험―스스로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깎아내리게 되는―, 교묘한 남성들의 가스라이팅을 이렇게 잘 보여주다니. 무엇보다 그는 '어머니들의 위대함'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대단하다고 칭송받는 몇몇 여성 서사의 콘텐츠들에서 나는 종종 거북스러울 때가 있었다. '집 안에 갇혀서', '한낱 허드렛일'을 맡아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역할에 대한 평가절하를 목격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 허드렛일들의 고상함과 가치에 대하여 소리높여 말하는 이런 작품이 귀한 이유이다. 경제적 보상을 충분히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더이상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무보수로 수행해온 일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이야기가 흔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퍼트리샤가 제임스 해리스를 쫓는 일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친구 그레이스를 찾아갔다가 그로부터 따끔한 말을 듣는데, 이 대사를 꼭 옮겨적고 싶었다. 책 <호러북클럽>과 우리 어머니들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왜 자기는 우리 일이 하찮다는 듯 굴어 하루가 멀다 하고 혼돈과 혼란의 삶이 펼쳐지고 우리가 매일같이 그 정리를 도맡아. 우리가 없으면 이 사람들은 불결과 무질서 속에 뒹굴 거야. 중요한 어떤 일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할 거라고. 그런 역할을 비웃는 건 대체 누구한테 배웠대? 내가 말헤줄게. 제 어머니의 진정한 가치조차 모르는 누군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