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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ug 22. 2022

다시 시작하는 일기, 그리고 <유령의 마음으로>

    특별할 것 없던 오후, 유령은 내 어깨에 기대어 있다가 스르르 사라졌다. 사라지기 전, 유령은 내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러나 그것은 언어의 형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꿈처럼 아름답고 깃털처럼 부드러운, 물고기처럼 유연하고 흐르는 물처럼 반짝이는 유령의 마음이었다.

― <유령의 마음으로>, 임선우 작가 지음


    임선우 소설가의 단편집 <유령의 마음으로>에 실린 표제작이 마음에 쏙 들어서 다시 읽고 있다. 요즘 단편소설을 쓰고 있어서 마음에 드는 단편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번 읽으면서 배울 점을 찾고 있다. 담담하게 서술되어 이입이 잘 되며 가독성이 좋다. 표현도 독창적이고 아주 세밀하다. 그래서 여러차례 읽어도 신선하다. 무엇보다 담고 있는 메세지가 따뜻해서 위로가 된다. 


    어느날 빵집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로부터 '나'와 똑같이 생긴 유령이 스르르 빠져나온다. 유령은 감정을 똑같이 느낄 뿐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 유령에서 멀어질수록 '나'는 견딜 수 없이 추워져서 유령과 꼭 붙어있어야 한다. '나'는 유령이 나타나면서부터 어쩐지 얼굴이 폈다는 소리를 듣는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더는 하지 않게 된다.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 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를 유령을 통해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식물인간이 된 남자친구 김정수와 이별할 수 있게 되고, 그 얼마 이후 유령은 생겨났을 때처럼 스르르 사라진다.



    나는 이 소설을 명상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나'는 유령이 나타나면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던 자신의 감정을 알게 된다. 유령은 '나에게 도달하지 못한 감정들'을 가지고 우는 존재였으며, 덤덤한 척 가만히 있어도 속상해하지 말라고 위로해주는 존재였다. 나는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 깊은 수렁 속에서 빠져나올 용기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결국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며, 그러기 위해서 대단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다. 그저 날 가만히 들여다봐주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내 마음을 살펴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요즘 내가 견딜 수 없이 싫다. 내가 쓸데없는 짓을 했나, 내가 왜 그렇게밖에 못했지, 왜 더 잘 할 수 없었지, 더 잘해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왜 나는 여기에 있나, 같은, 이렇게 적어놓으니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끔찍한 생각들을 계속 하고 있다. 더 잘하고 싶어서, 더 괜찮은 내가 되고 싶어서 날 자꾸 다그치는 것이다. 지금의 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내일은 꼭 달리기를 하러 나가야지. 오늘은 기력이 없었다. 원래 퇴근길에 비가 올 예정이었는데 아직까지 안 온 것 같다. 오늘은 아침과 저녁에 얼린 바나나를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사각사각 씹는 느낌이 좋았고 달았다. 요즘 열무김치가 그렇게 맛있다. 미역국이랑. 엄마가 미역국이 몸에 좋다고 말해준 다음부터 열심히 먹고 있는데 몸에도 확실히 좋은 것 같다. 내일 아침에도 미역국을 먹을 생각이다.


    생각은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걸 실감하고 있다. 내 마음을 좀 더 알아차려주려고 일기쓰기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아침은 힘들다. 최대한 늦게까지 잔 다음에 일어나서 밥 먹고 출근하기 바쁘니까. 하지만 저녁 때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실 소설을 써야 하는데 쓰기 싫고 힘겨워서 이러고 있다. 하하.


    오늘 감사한 건 맛있는 점심을 먹은 것. 두부조림에 들어간 고추가 엄청 매워서 속이 다 긁히는 것 같았지만 두부가 부드럽고 콩나물무침도 짜지 않고 맛있었다. 내일 점심도 맛있고 든든하게 챙겨먹어야지. 오늘 저녁에는 운동루틴을 모두 완수했고, 못한 달리기는 내일 할 예정. 또 오랜만에 유투브를 봤는데 재밌었다. 아기가 너무너무 귀여워. 출퇴근길에는 <오지은의 이런 나라도 떠나고 싶다>를 팟캐스트로 들었다. 나 정말 떠나고 싶네. 혼자 가면 너무 외롭지는 않을지 조금 걱정이 된다. 나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엄마가 내 가는 길을 응원해주면 더 힘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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