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시절 단 한 번도 내 방을 가진 적이 없다. 늘 방 한 칸 짜리에서 어머니와 아둥바둥 살았다. 컴퓨터를 하더라도 어머니의 눈치를 봐야 했고, 심지어 공부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무엇을 하건 어머니가 불편할까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러나 어머니는 언제나 자기 멋대로였다. 집에 도청 장치가 있다고 굳게 믿었으며, 매일 허공에다 고레고레 소리를 질렀다. 어린 시절은 지옥 그 자체였다. 가난한 과부는 정신조차 온전하지 못했으며, 그 아들은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저 어머니가 싫었고 매일 소리를 질렀다. 이웃 사이에서는 불효자라는 질책을 받았으며, 그 억울함은 또 다시 어머니에 대한 분노로 분출됐다.
어머니가 꼴도 보기 싫었던 적은 한 두번도 아니었다. 그럴 때면 내가 집을 나가거나 어머니를 내쫓거나였다. 하루는 집을 나간 뒤 돌아와 무심결에 과도를 꺼내 들었다. 지금 내가 죽어 버리면 모든 일이 끝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그러나 나는 죽음을 택할만큼 용감하지 않았다. 내가 죽음을 생각하게 된 그 상황도 너무 싫었다. 나는 그저 남들과 똑같이 살고 싶을 뿐인데, 그 삶을 응원해줘야 하는 어머니가 일상을 망가뜨렸다. 무작정 어머니를 원망하자니 스스로가 불효자가 되는 것 같아 싫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분노만 쌓여 갔다.
어머니와 언성을 높이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쳤으며, 어머니는 그 날 따라 나가지 않았다. 결국 힘으로 어머니를 집 밖으로 내보냈다. 단 5분이라도 좋았다. 그저 5분 만이라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머니는 곧장 119에 전화를 했다. 아들이 문을 열어 주지 않으니 뜯어 내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나는 끝까지 문을 열지 않았다. 어머니의 상태가 그 정도는 아니라고 믿고 싶었기 때문일까. 어머니가 119 대원들만 철수 시킨다면 문을 열어 줄 생각이었다. 어머니에게는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 정도로 망가졌다고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이윽고 문을 뜯어 냈고, 나는 문이 열림과 동시에 집 밖으로 나갔다. 이제 보니 경찰들도 와 있었으며, 내 뒤를 따라 왔다. 그 상황이 싫어 무작정 달렸다.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그저 사춘기 아들과 어머니의 말다툼일 뿐이었다. 학업에 지친 아들의 짜증 어린 소리와 자식이 걱정되는 어머니의 잔소리였을 뿐이다. 아주 평범한 상황이었으며, 현관문이 뜯길 만한 일도 경찰이 개입할 일도 아니었다. 경찰은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결국 내가 이해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대체 왜 내가 이해를 해야 하는가. 아니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문제긴 했을까.
고작 19살이었다. 친구와 성적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아는, 대학 잘못 가면 인생이 망한다고 믿는 나이였다. 다른 녀석들은 학원과 과외를 받고, 최신 전자 기기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 어머니는 단 돈 만 원이 없어서 참고서를 사주지 못했다. 성탄절이면 불우 이웃 성금을 받았으며, 어머니는 공짜 돈이 생겼다며 좋아하셨다. 나는 내가 그토록 가난하다는 사실도 싫었지만, 내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는 어머니가 더욱 싫었다. 그런데 대체 내가 뭘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 내가 뭘 이해할 수는 있었을까.
평생을 어머니를 원망하며 살아 왔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나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아직도 어머니를 조금 더 일찍 입원시키지 못한 내 자신을 원망한다. 그 어린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었겠냐고 묻겠지만, 나는 분명 자각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친척들과 주변 어른들의 도움을 받으면 어떤 식으로든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외면했다. 부모를 정신병원에 집어 넣는 불효자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입원시키는 과정에서 받을 상처와 비난들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기약없이 병원에서 일상을 보낸다.
사람들은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탓인가? 그렇지 않다. 나는 그 누구도 탓하지 못한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이다. 탓하지 못하는 삶은 서글프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면 왜 내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가. 왜 나의 어머니는 어린 과부가 된 것도 서러워 일생을 정신병원에서 보내야 하는가. 왜 나는 아버지가 없는 것도 서러운데 조현병이 걸린 어머니 밑에서 하루하루를 지옥으로 보냈는가.
차라리 누군가의 잘못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군가를 마음껏 욕하는 것으로 내 기분이 풀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누구도 욕해선 안 된다.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기 떄문이다. 실제로 그렇다.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어쩌면 세상은 원망할 대상이 필요해서 신을 찾는지도 모른다. 불행이 내 탓이라면 너무 억울하니 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우연이면 어떻고 신의 탓이면 어떠한가. 어쨌든 내 탓도 어머니의 탓도 아닌 게 중요하다. 우선은 그걸 깨달은 것만으로도 만족하자. 평생을 자책하며 사는 삶만큼 불행한 삶은 없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