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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장수 Jan 27. 2021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고

<<나의 아름다운 정원>> / 심윤경 / 한겨레출판 / 2002

예기치 못한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벅차오르는 감정을 내 머릿속 언어로는 표현하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멀거니 바라보다가 이 일생일대의 순간과 작별을 고하는 것이 아쉬워 사진을 찰칵 찍어댄다. 마음에 촉촉이 내린 단비도 금세 희뿌연 흔적만 남긴 채 증발해버리는 것이 아까워 사진이라도 건져 그 희미한 자국에 다시 생기를 불러일으키길 바라는 까닭이다. 내겐 독후감이란 여태껏 갖가지 미사여구를 붙여대며 억지로 교훈을 만들어냈던 학창 시절 숙제 정도로 여겨졌던 터라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어린 시절 일을 떠올리면 망신스러워 이불 킥을 해대던 끔찍한 기억들도 어쩌면 내게 가장 찬란했던 시절은 아닐까 알려준 한 소설을 만나고 나서부터,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내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보고자 펜을 들었다.


심윤경 작가에게 한겨레문학상을 안겨주었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소설인데, 메케한 최루탄 냄새가 느껴지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의 시대상을 순수한 아이의 눈으로 그린 내용이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 동구는 말수가 적고 어리숙한 탓에 구박받기 일쑤였다. 그의 주변에는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어머니와 그녀를 괴롭히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 편만 드는 고지식한 아버지, 남자아이를 바랐지만, 그 기대를 저버리고 태어난 동구의 하나뿐인 여동생 영주, 동구를 진심으로 아껴준 탓에 동구의 여신이 되었던 박 선생님, 막 나가는 시대를 막걸리 한 사발 걸치며 비판하던 고시생 주리 삼촌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동구가 세상을 알아가고, 그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해주었던 사람들이다.


지금 보면 참 불합리한 것들인데, 그땐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다. 그땐 시어머니는 남자아이가 태어나길 노골적으로  바랐고, 그것을 당연히 일생일대의 숙제로 여겼던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의 지독한 욕을 견디면서도 살아갔다. 군인들이 정치했던 시절, 사람들은 주린 배를 채워주니, 유신이니 뭐니 해도 참 훌륭한 대통령이었노라고 찬양했다. 그리고 1979년 늦가을, 많은 이들이 울었다. 이제 그의 시대는 끝이 났다고 여겼는데, 또다시 도시 한복판에는 더 크고 무시무시한 탱크가 등장했다. 이듬해 광주에서는 시민들이 아무도 모르게 죽어 나갔다.


이 소설에는 풍부한 의성어와 의태어가 자주 쓰였는데, 등장인물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었다. 독자는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자연스레 몸속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동구의 할머니는 욕을 입에 달고 살면서 며느리를 허구한 날 잡아먹는 빌런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 급하게 밥을 먹다 체한 것처럼 답답함마저 느껴졌다. 동구 할머니는 어린 시절 내 할머니와 닮아 있었다. 그 입에서 행여나 또 욕설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동구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내 할머니는 그야말로 싸움닭이었다. 그가 등장하면 모두 긴장을 하고, 목소리를 높여 싸웠다. 그럴 때면 나는 슬그머니 창피함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곤 했다. 한 번은 운동회날 늦게 도착한 탓에 그늘막 아래에는 앉을자리가 없었다. 개중에 돗자리만 펴두고 자리를 뜬 곳을 향해 걸어가더니, 그곳의 돗자리를 걷어버리고 집에서 챙겨 온 신문지를 흙바닥에 깔고 나한테 앉으라고 했다. 조금 후 먼저 자리를 맡았던 아주머니가 오더니 자신의 자리라고 주장을 하자, 할머니는 독기 가득한 눈을 치켜뜨고 욕설을 섞어가며 고성의 알아듣지 못할 말로 몰아붙였다. 주변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고, 아주머니는 똥 밟았다는 표정으로 어린 나한테까지 눈을 흘기며 뒤돌아갔다. 할머니의 이런 공격적인 태도는 어머니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할머니는 어머니를 언제나 욕했다. 어머니가 없을 때를 틈타 내 앞에서 큰 목소리로 어머니 욕을 할 때면, 나는 그 꼴이 보기 싫어서 어머니가 오자마자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토시 하나 빠뜨리지 않고 할머니가 했던 욕을 그대로 읊으며 재연했다.


주리 삼촌은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엘리트 청년으로 등장한다. 군인이 정치를 하던 시절, 주점에 삼삼오오 모인 대학생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들이켜며 냉소적으로 정권을 비판했다. 주리 삼촌은 바로 그들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동구가 순진하고 호기심 가득한 모습으로 탱크 구경을 간다고 했을 때 늘 친근했던 주리 삼촌은 표정을 훽 바꾸며 동구의 무지를 맹렬히 비난했다. 어린아이인 동구한테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마 주리 삼촌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했던, 때론 멀찌감치 서서 불구경하는 듯하는 모습에 잔인함마저 느꼈던 사람들을 향한 분노를 동구에게 퍼부은 듯하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만 하지 않는다. 허구한 날 입에 욕을 달고 사는 빌런, 동구 할머니도 타도의 대상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박 선생님이 나타나 동구에게 할머니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그 비밀을 알려준다.



“(…) 남을 이해하려면 네가 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봐야 하거든. 어렵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서 깊이깊이 생각해봐야 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거야. 특히 이해하기 힘든 사람일수록 정성을 다해서 더 깊게 생각해야 해. 내 생각에는 말이야.”

“(…) 할머니는 아무런 희망이 없거든.”

(…) 텅 빈 두개골 속에 선생님의 목소리만이 메아리쳤다. 할머니에게는 희망이 없거든.



이 대목은 내 두개골도 내려쳤다. 나는 미워하는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그 사람으로 빙의되어 헤아려 본 적이 있나? 휘두르지도 못할 복수의 칼날만 갈았지, 아마도 많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동구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영주가 사고로 죽게 된 사건과 며느리와의 격렬한 싸움을 겪은 이후 평소 같으면 까랑까랑하게 목청을 드높여 억센 욕설을 해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줄곧 힘없이 누워만 있던 할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할머니, 우리 둘이 노루너미 가서 살까.”


노루너미는 할머니가 그토록 원하는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 수 있는 꿈의 장소였다.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을 그린 이 잔혹한 동화는 이 땅 위에서 삶을 일구며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지각색의 나무와 꽃이 어울려져 정원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을 빗대어 조화로움을 강조했다.


특히 인상적인 인물은 바로 동구의 여동생 영주였다. 소설에서는 영주가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사내아이를 바랐던 많은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여자아이로 태어났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무장해제시킬 정도로 사랑스럽고, 총명하고 또 용감했다. 사내아이 못지않은 존재감을 드러내며 동구 가족에게 소중한 존재로 자리매김하며 가족들의 생각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또 동구는 비록 난독증으로 글씨 읽는 게 서툴렀고 공부를 그다지 잘하진 못했지만, 영주를 업고 다닐 정도로 자식처럼 보살피고 아끼는 마음 덕분에 박 선생님에게 인정을 받게 된다. 당시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던 터라, 집안에 공부 잘하는 아이가 있으면 계층 이동이 가능했다. 근데 동구는 공부를 못했으니 계층이동의 꿈이 희박했다. 이런 이유로 아버지와 할머니의 구박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늘 이렇게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동구였지만, 그의 다른 면을 알아봐 주고 숨어있는 가치를 재조명하고, 또 그것을 정성스러운 손편지로 가족들에게 알렸던 박 선생님은 동구에게 구원자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영주는 동구의 따뜻한 마음씨가 부각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한 것 같다. 늘 전쟁터처럼 긴장감이 넘치는 동구 집안에도 영주가 나타나면 다들 미소를 머금고 있으니, 영주는 귀여움으로 평화를 가져다준 존재였고 , 때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손찌검할 때 작은 몸으로 그 앞을 막아서고 어머니 편을 들면서 열세에 몰리던 어머니를 승자로 만들어준 존재이기도 했다. 이랬던 영주가 사고로 죽게 되었을 때 나도 기분이 내려앉았다. 동구네 가족 분위기도 다시 냉랭하게 얼어붙고, 서로를 힐난하며 상처를 덧나게 했다. 다행히 이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직은 어색하고 서툰 할머니의 며느리를 향한 화해의 제스처나 동구가 이 악당 같은 할머니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는 마음, 여전히 권위적인지만 기가 한풀 꺾여 가족을 재건하려는 아버지의 노력은 한 가닥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후에 전개될 이야기는 남은 이들이 풀어가야 할 숙제인 것이다.


그렇게 1981년, 내가 태어난 해에 이 책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물론 이 이후에도 거리에는 한동안 사람들의 시위와 최루탄 냄새가 이어질 거란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진짜 이야기는 모세혈관처럼 촘촘히 뻗어있는 동네 어귀, 북새통속 시장, 언덕배기에 스며있는 허연 입김들이 모여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지금 이 순간도 그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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