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의미가 모여 만든 나의 세계
지난겨울 찾아온 코로나는 세상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매일 타고 다니는 지하철과 버스가 두려움의 공간이 되었다. 주변에서 누군가 헛기침이라도 하면 다들 불안한 눈빛으로 경계했다. 점차 사람 붐비는 곳은 피하고, 약속도 취소했다. 엘리베이터 층수를 누를 때도, 카페의 문을 열 때도 가급적 손이 닿지 않도록 했다.
마스크를 쓴 채 멀찌감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익숙해질 무렵, 버스를 타고 창 밖 풍경을 보았다. 잿빛의 계절을 지나 버드나무에 어린 잎사귀가 점점 자라났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짝을 이뤄 피더니, 어느새 벚나무에 하얀 눈송이가 맺혔다. 도심 공원에는 튤립 봉오리가 천천히 솟아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른 아침은 춥고 쌀쌀했는데, 이젠 두꺼운 외투를 벗고 화창한 햇빛을 맞으니 어리둥절했다. 그렇게 봄이 왔다. 코로나와 봄은 참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모든 것이 정지한 것 같았던 세계였는데, 꽃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들뜬 마음으로 집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단지 안이라 산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작았지만, 이미 몇몇 주민들이 나와 거닐고 있었다. 다들 마스크는 쓰고 있었지만 즐거운 마음을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아파트 안에 쓰레기 처리장 주변에 홀로 핀 벚나무에도 꽃이 하얗게 맺혔다. 군락을 이룬 벚나무처럼 화려하진 못했지만, 외롭게 홀로 벚꽃을 틔우며 주변을 하얗게 밝히고 있었다.
벚꽃을 좀 더 가까이 보려고 다가갔다. 그러고 보니 난 벚꽃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다. 벚꽃잎에 눈송이처럼 떨어질 때면 그 신비로운 분위기에 홀딱 빠져 흩뿌리는 벚꽃을 맞으며 거리를 이리저리 배회했던 적은 있는데 말이다. 벚나무 가까이 다가가 꽃 잎을 자세히 보았다. 높은 위치에 매달린 벚꽃은 멀리 감치 있어 자세히 볼 수 없었고, 나무 몸통에 실수로 자란(?) 벚꽃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벚꽃잎이 무궁화를 닮았다는 것. 유레카!
이후 아파트 안을 거닐 때면, 어김없이 내 시선은 그 벚나무, 그것도 특별히 나무 몸통에 뜬금없이 자라난 벚꽃에 머물렀다. 나에겐 어느새 특별한 꽃잎이 되고, 벚나무가 되었다. 어린 왕자가 지구별의 무수히 화려하게 피어난 많은 장미보다 자신의 행성인 B612에 두고 온 까탈스러운 장미꽃이 소중한 것처럼 밀이다.
코로나는 나의 생활 반경을 크게 좁혀 놓았다. 그렇지만 주변을 점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지금껏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주변에 시선을 조금 돌리니, 존재 조차 모르고 있던 생명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자라나고 있는 진달래, 조팝나무, 민들레. 매일 지나는 길인데도 지금까진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갔던 것들이었다.
지금껏 나의 세계는 텅텅 빈 방처럼 허전했고 나에게 필요한 것들로만 채웠다. 보이지 않던 것이 관심을 가지는 순간 마법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특별해지고 의미가 되어 나의 세계로 들어온다. 그렇게 발견한 것들은 소소하지만 소중한 의미가 되고, 내 안에 들어와 황량한 마음의 방을 장식했다.
어쩌면 이 소소한 의미들로 내 방을 꾸민다면 굉장히 따뜻하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소소한 의미를 찾으려면 주변을 살펴야 한다는 것도. 그렇게 작지만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다 보면 나의 세계는 점점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나이 마흔이 되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