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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ter flush Dec 29. 2023

나의 시간

살면서 만나게 된 이런저런 인연들.

그들 중에는 어느 순간부터 데면데면해지며 더는 만남을 이어가지 않는 이들도 있고,

만남을 약속한 순간부터 기쁘게 그날이 기다려지는 이들도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결이 비슷한 사람들로 인간관계의 폭이 좁아지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시간이라는 것은 한정되어 있고, 그 시간을 알차게 쓰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내 귀한 시간을 원치 않는 대화와 부정적인 기운에 휘둘리며 보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것이 줄을 세우고 각을 잡듯 원하는 대로만 엮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때로는 싫어도 함께여야 하기에!) 그 안에서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도 능력이겠다. 나는 그 유연성이 어느 정도일까? 참고 견디는 것엔 자신이 있는 편이지만 유연하게 사회성을 발휘하는 것에는 글쎄.. 전혀 능력이 없어 보인다.


살아가는 일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어떤 자리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끼는지, 어떤 사람과 어울릴 때 가장 나다운 모습이 되는지, 어떤 대화에서 나는 채워지는지.. 내가 나를 잘 모르던 시기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과 편치 않은 대화를 나누며 채워지지 않는 시간 속에서 방황했던 것 같다. 그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내 안에서 그 문제를 찾으려 노력했고 수시로 좌절했다.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즐거워하고 유쾌한 그들 사이에서 난 왜 즐겁지 않고 유쾌하지 않으며 시간이 의미 없이 흐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을까? 그것이 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나만의 시간에 고인 채 고독의 시간을 통과한 후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당시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고 거의 홀로 지내다시피 했는데 그때 제대로 만난 것이 책이다.  혼자 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딸아이가 학교에 가면 아이가 읽을 책을 고르러 도서관에 갔던 게 계기였다. 도서관에 가면 마음이 편해졌고 외롭지 않았다. 혼자여도 아무렇지 않은 곳. 누군가와 애써 어울리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장소. 쉼 쉴 수 있었다. 외롭지 않진 않았지만 내가 있을 곳이 아닌 자리에 다시 나를 두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도 자라기 시작했다. 내 삶의 궤도를 잘 찾아 안착한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다 보니 쓰고 싶어졌고, 그렇게 끄적이며 글을 쓰면서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났다. 늘 쓰던 아이. 일기를 쓰고, 독후감을 쓰고, 생각으로 가득해 그 생각들을 늘 어딘가에 옮겨 적던 아이. 시를 쓰고, 소설을 쓰던 아이. 초등학교 6학년 겨울 방학 누런 스프링 연습장에 소설이라는 것을 처음 써봤다. 완성되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겨우내 방에 틀어박혀 글을 썼던 기억이 새롭게 올라왔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잘 알려주는 단서가 그 시절에 암호처럼 숨어 있던 건 아닐까? 말이 없던 아이. 마음에 품은 생각을 말로 얼마나 표현하며 살아왔을까? 원하는 것, 원치 않는 것..  분명한 나의 생각들을 드러내지 않으며 그저 묵묵한 말이 없는 아이로 살아온 긴 시간들. 그때의 나를 만난다. 너무 늦게 찾은 거 아니냐고, 그동안 외로웠다고 뾰루퉁해진 내면아이는 눈을 흘길지 모르지만 이제라도 다독이고 함께 할 시간을 마련한다.


삶은 시작부터 끝까지 나와의 긴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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