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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ter flush Feb 04. 2024

엄마의 자리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단을 받은 엄마는 조금씩 기억과 멀어지고 있다.

평소 같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치매 검사를 받은 게 1년 전이다.

처음 시작은 자신의 옷을 누군가 가져 갔다고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장롱 속의 옷을 전부 꺼내 어떤 옷을 찾으시는 건지, 분명 누군가 집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창밖에서 누군가 쳐다본다고 하셨다. 엄마의 집은 23층인데 어떻게 창밖에서 누가 쳐다볼 수 있을까.

언니가 서둘러 신경과 진료를 예약했고,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 마음을 졸였던 시간도 이제 많이 흘렀다.

의사의 처방대로 약을 드신 다음엔 옷 이야기도 창밖의 사람 이야기도 더는 하지 않으셨다.

평소 점잖고 말수가 적은 예전의 엄마 모습으로 돌아와 다행이었지만 살갑게 나누던 다정한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다. 엄마는 나와 대화하는 걸 참 좋아하셨는데 그 즐거움을 함께 누리지 못하니 진즉에 좀 더 자주 찾아뵐 것을 하는 후회가 는다. 엄마한테 가볼까 하다가 말았던 순간들이 왜 더 또렷이 떠오르는지 마음이 편치 않다.

아빠는 돌아가시기 전 엄마 걱정을 많이 하셨다. 무서움을 많이 탄다고 혼자 남을 엄마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시던 아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빠가 가시고 7년째,  홀로 외로움과 맞서며 티 내지 않고 홀로된 삶에 적응하려 애를 많이 쓰셨다. 가끔 엄마에게 들려 함께 점심을 먹고 차도 마시며 오붓한 데이트를 즐기다 오곤 했는데 헤어질 때 짓는 엄마의 애잔한 미소는 늘 마음에 걸렸다. 더 머물다 갔으면 하는 표정이 읽히지만 붙잡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을 보는 게 때론 힘들어 엄마를 보러 가려는 마음을 붙잡을 때도 있었다. 기억에 곱게 쌓인 엄마와 나눈 대화들. 다시 나눌 수 있을까.. 한번은 찻집의 옆 테이블에 앉은 이가 모녀 사이가 너무 다정해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난다며 자신도 저녁에 엄마한테 연락을 드려야겠다고 말을 건 적도 있었다. 엄마는 평생을 소녀같이 곱고 얌전하게 사신 분이다. 큰소리 내는 적이 거의 없고, 얼굴엔 늘 잔잔한 미소가 고여있다. 가족을 본인 인생의 제1보물로 여길 정도로 희생적이고 자식들에게 넘치도록 사랑을 주셨다. 그런 엄마가 어느 날부터 가끔씩 눈에 초점이 흐려지는 것이다. 약기운 때문일까 멍한 표정의 엄마를 보는 게 힘들다. 밥을 먹고 약을 드시고 조금 있다 다시 약봉지를 뜯는 모습을 보고 드시던 약을 모두 숨겨 놓았다.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조금 있다 다시 세수를 하시니 일상의 일들이 무한 반복이다. 그래도 아직은 모든 식구를 다 잘 알아보신다.  의사의 권유로 주간 보호 센터를 다니고, 아침저녁 요양 보호사가 집으로 오신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한 마음은 한구석 돌처럼 무겁다.

지난 월요일 주간보호 센터로부터 연락이 왔다. 늘 제자리로 잘 찾아가시던 엄마가 처음으로 방향감각을 잃고 자리를 못 찾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또 연락이 와서는 오른쪽 다리에 힘이 풀려 잘 못 걸으시니 병원에 한번 가보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바로 엄마를 모시고 응급실을 찾았다. CT를 찍고 얼마 안 돼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링거를 몇 개씩 매달고 양쪽 어깨에 주사를 놓고 부산하게 움직인다. 급성 뇌출혈이라고 던진 말이 귀에 꽂힌다. 주말에 언니와 함께 엄마를 모시고 외출을 했었는데 그게 문제였을까? 추운 날씨 변화에 그럴 수도 있다고, 혹은 어디 부딪혔을 수도, 아니면 높은 혈압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단다. 응급실에서 엄마의 혈압은 잘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 빨리 병원에 오게 돼 수술은 막을 수 있었고 계속해서 CT를 찍으며 추이를 살피겠단다.


엄마는 늘 '나는 다 괜찮다'라고 하신다. 응급실에 가시면서도 내게 그런다. 괜찮은데 왜 병원에 가냐고..

엄마를 보면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다. 언제 어떻게 되실까 봐 조심스럽고 가늘게 여윈 팔다리가 안타깝고, 자식들 걱정할까 다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속상하다. 이젠 병실에 누워서도 다 괜찮단다. 아프고 힘들고 외롭고 지쳤다고 하실 법도 한데 그 티를 한 번 안 내신다. 그런 엄마를 보면 한없이 미안하다. 기억이 좋았을 때 더 자주 찾아뵈면 좋았을 것을. 후회는 늘 현재진행형이다.



엄마와 팔짱 끼고 걷던 길..

오십이 넘은 이 나이에도 엄마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 오늘로 6일째, 다행히 혈압도 안정적으로 내려왔고, 약물로 뇌출혈도 잡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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