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을 그 해에 다시 꺼내 읽는 경우가 드문데, 지난봄에 읽으며 연상된 겨울 이미지에 12월이 되며 다시 집어 들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시간적 배경과 사이사이 살얼음이 배인 듯 시리도록 서늘한 풍경에 번지는 따스함이 이 계절과 닮아있다. 절제된 언어와 다듬고 다듬어 바스러질 듯 덜어낸 표현들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암시와 풀어낼수록 흘러넘치는 풍성한 스토리가 재차 읽을수록 그 즐거움을 더한다. 바로 쏟아내는 게 쉽지, 감추고 누르고 보일 듯 말 듯 숨겨놓는 것이야말로 고수의 방식 아닌가. 글 없는 그림책을 보며 상상을 더하듯, 단단한 스토리를 중심으로 숨은 갈래길을 발견하며 자유로운 동행을 제시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80년대 중반,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빌 펄롱이라는 한 남자의 인생에 시선을 맞추고 글을 따라가며, 지극히 평범하고 성실한 펄롱의 인생 어느 시점에서 맞닥뜨린 사건이 자신의 과거와 맞물리면서 그의 내면에서 마주하는 양심의 갈등, 그 혼란한 마음속 여정에 어느 순간 동행하게 된다.
18세기부터 존재했던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는 거리의 여자, 고아, 미혼모, 심지어 그냥 미모가 예쁜(남자들을 타락시킬만하다는 이유로) 여자들을 붙잡아 가두고 극심한 노동을 시키며 자유를 앗아간 곳이다. 이곳은 국가지원을 받으며 천주교 세력의 주도하에 운영되었기에 200년이라는 세월을 꿋꿋하게(아일랜드에서 마지막 막달레나 세탁소가 문을 닫은 게 1996년이라 한다) 존립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
부당하게 비참한 삶을 살아낸 어린 그녀들의 삶과 방관하는 어른들. 왜곡된 신념을 무기로 휘두르며 강압적인 힘을 소유한 거대한 집단에 맞설 용기를 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내 아일린과 네 자녀와 함께 소시민의 삶을 살며 차근차근 삶의 궤도를 오르던 빌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을 무모한 용기와 양심의 외면 사이에서 괴로워하게 된다.
어느 날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하러 갔다가 성에가 단단히 낀 빗장을 힘겹게 열고 들어갔을 때 그 어둡고 차가운 바닥에서 맨발로 밤을 지샌 세라와의 만남은 더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어린 세라는 그의 어머니 세라(빌의 어머니 역시 미혼모)를 연상시켰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기억 속에서 어린 시절 자신에게 베풀어준 미시즈 윌슨의 소소한 친절들이 결코 작지 않은 선물이었음을, 아버지였을지도 모를 네드의 친절이 큰 사랑이었음을, 당시엔 알지 못했던 수많은 따뜻한 기억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마음속에 가득했기에, 딛고 일어설 지반이 굳건했기에 곧 들이닥칠 모진 바람과 광풍에 휩쓸리듯 힘겨울 시련이 예상되지만 그의 마음속에 은은하게 번진 그것은 그보다 더 클 후회의 강을 이미 넘었다.
마음에 심긴 작고 소소한 친절들이 혹독한 계절을 버티고 사랑으로 피어나 삶을 지탱해 준다.
어제 스톡홀름에서 강연한 한강 작가의 짧은 연설, 인간의 잔혹함과 아름다움 사이 마음속에 일어난 질문들이 자신의 글쓰기 동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며칠 전 국회 앞에서 벌어진,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던 장면들이 오버랩되며 참담한 심정이 되고 만다. 오월의 광주가 그랬듯, 200년간 아일랜드의 굳게 닫힌 수녀원에서 그랬듯 강압적인 폭력성과 잔혹함의 역사는 되풀이되고, 탄핵을 외치며 빛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온 그 아름다운 마음의 불씨들이 대비되면서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