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의 신호
상대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없다면 내 안에 화가 차오를 일은 줄어들 것이다. 대부분의 화는 상대에게 은근히 바라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건 부모 자식 간의 관계든 친구 사이의 관계든 심지어는 모르는 이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약속시간에 만난 친구가 몇 시간 후 다른 약속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화가 차오른다면 그건 서운함에서 오는 마음의 한 종류일지 모르겠다. 평소 이 친구의 태도에 불만이 쌓여 화를 참지 못하고 모난 마음을 드러냈다가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린 상대의 무언가를 내 기준에 맞춰 바꿔보려 부단히 노력한다. 거슬리는 게 많은 사람들은 바꾸려는 자신의 의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가장 흔한 대표적인 부부싸움 중 하나가 양말을 뒤집어 벗어놓는 남편 때문에 생기는 다툼이다. 뒤집힌 양말을 바라보면 속이 뒤집히는 아내. 잔소리의 양만큼 개선되지 않는 현상이 화로 차곡차곡 쌓인다면 부부싸움의 형태는 날로 진화할 것이다. 관계 속에서 조율은 필요하지만 그 조율의 기준은 느슨할 필요가 있다. 몇 번의 시도로도 개선되지 않는 일들은 포기(그것이 살고 죽는 일이 아니고서야)하는 게 현명하다. 남편이 양말을 뒤집어서 빨래통에 넣었으면 하는 일은 아내의 바람이지 사는데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다. 더러운 양말을 뒤집으려니 양말만 봐도 화가 차오른다는 지인에게 뒤집어진 채로 빨고 말려서 그 상태로 개면 본인이 알아서 뒤집어 신을 것이니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얘기해 줬다. 언제까지 그 일로 화를 낼 것인가. 그 화의 시작이 남편의 작은 행동이기보단 그것을 보고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자신에게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하는 깨달음. 그러니까 화의 시작점은 상대의 행동이 아닌 자신의 기대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가 나와의 시간을 온전히 함께 했으면 했던 기대가 다른 약속으로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들었다면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뭔가 이유가 있겠지'라는 마음과 그래도 취소하지 않고 나와준 데 대한 고마움으로 생각을 전환해 본다면 그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 나만의 자유시간을 새로운 여행처럼 즐겨봐야지 라는 마음까지 보태진다면 슬슬 차오르던 '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설렘이 그 자리를 대신 할지 모를 일이다.
마음의 방향을 어느 곳으로 이끌고 갈지는 내 선택에 달린 일이다. 내 안에 스멀스멀 오르는 화에 상대를 향한 기대의 마음이 얼마나 자리하는지 살펴보자. 이렇게 해줬으면 하는 마음자리를 발견하면 그때부터가 내 마음을 다스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