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한강
시력을 잃어가는 한 남자와 말을 잃은 여자. 그들 앞의 삶은 두려움이다.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로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무서운 자각이 그 두려움을 또렷이 각인시키기에 어둠을 향해 가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앞에 침묵과 상실의 고통은 익숙한 무늬처럼 번진다. 늘 보던 세상을 더는 볼 수 없게 된다는 선고는 마치 저주처럼 들린다. 보는 능력을 잃어가는 눈이 점점 어둠을 향해갈수록 극한의 상실과 좌절로 시들어가는 그의 내면은 뿌연 안개처럼 흐리다. 유전적인 이유로 시력을 잃어가는 '그'는 자신의 미래를 아버지로부터 이미 경험했기에 어린 시절부터 인지된 자신의 운명을 무겁게 떠안고 산다. 낯선 땅 독일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또다시 낯선 고향으로 회귀하는 그의 결단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미 안정된 이국의 삶을 떠나 새로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한국에서의 삶이 좀 더 나을 거라는 기대는 없었을 것이다. 그 속엔 남은 식구들에게 신세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이방인으로서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모든 걸 홀로서기하며 새로 시작하고자 하는 독한 마음이 고집을 부린 것인지 모른다. 이민 생활에서 그에게 안정감을 주었던 희랍어를 무기로 그는 희미한 시력을 감추고 강사로서 한국에서의 삶을 이어간다.
'그녀'는 또 어떤가. 예민함과 극도의 섬세함은 작은 긁힘에도 깊은 상처를 내니 다친 마음은 입을 닫히게 만들어 결국 말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고 만다. 보드라운 맨살로 거친 모래밭을 쓸며 걷는 기분이 그럴까, 사람들이 뱉어내는 소리들이 사납게 할퀴며 그어대니 그녀의 말이 나설 자리는 작은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침묵이 도랑처럼 고일뿐이다. 언젠가 비블리오떼끄라는 불어 발음을 들었을 때 깨진 침묵을 기대하며 수강한 희랍어 시간. 그녀에게 그 언어는 마지막 희망의 수단이었다.
보이지 않기에 들리길 기대하는 남자와 소리로 전달할 수 없는 여자의 침묵은 맞잡은 손의 감각으로 교감한다. 그녀가 손바닥에 쓰는 말이 온몸으로 전달되는 그 순간 그의 가슴에 스며든 온기가 글을 따라 읽는 내게도 전해졌다. 단순한 대화.. 그러나 결코 단순하지 않은 감정. 걷히는 안개와 스며드는 따스함. 새처럼 여린 두 영혼의 순수가 내게도 퍼진다. 총 22장의 마지막은 22가 아닌 0이다. 상실과 시작을 동시에 의미하는 숫자. 그 공존의 지점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언어와 빛을 모두 잃은 0의 지점에서 상실의 우물에 빠질 것인지, 내딛을 운명의 시작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받아들여 여지껏 살아본 적 없는 형태의 날개를 달고 딛고 일어설 것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