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부터 새롭게 다니기 시작한 미용실이 있다. 사실 어디 갈 때 예약하고 가는걸 정말 싫어했는데 요즘은 미용실도 예약을 안하면 갈 수 가 없어서 어차피 예약이 필요하다면 내 기준으로 예약이 아깝지 않은 곳으로 다니자는 생각에 이용을 시작한 미용실이다. 내 머리를 담당해주는 디자이너 선생님과 22년 12월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씩 보고 있다. 지금이 24년 5월이니까 18번 정도 만난 것 같다. 내가 지금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나는 그 선생님을 18번 만나는 동안 네 개의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봐도 참 어이가 없다. 진짜 징글징글하게 회사를 옮겨다니고 있다. 뭐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요약하자면 지금보다 더 좋은 직장을 찾아 움직인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옮길 때 마다 최소 10%씩 연봉도 올리고 회사 이름값도 더 좋아졌다. 이런 이유가 내가 회사를 자주 옮긴 것에 대한 일종의 까방권이 되고 있지만 솔직히 바람직한 것은 아닌 것같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공식적인 백수 기간을 즐기고 있으며 오늘로 2주차 하고 2일을 맞이하고 있다. 미뤄왔던 자동차 리콜, 치과 방문, 벌초, 강원도 여행, 전 직장 동료와 골프 라운딩 그리고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서 오전에 운동하고 낮잠자고 스벅가서 브런치 글도 쓰는 멋진 삶을 살고있다.
오늘 아침에는 집 근처 한식뷔페에 가서 아침을 먹고왔다. 근처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주로 식사하는 한식뷔페(일명 함바집)는 특유의 아재 취향을 담아낸 찐한 낭만이 있다. 몇 명이나 계란 후라이를 해먹었을지 모르겠는 기름 가득한 팬에다가 나도 계란 후라이를 만들어 먹고, 소불고기랑 제육볶음이 동시에 나오는 판타스틱한 식단에 잔치국수까지 나오는 푸짐함이 있다. 식사 후에는 자판기 커피와 함께 담배타임을 갖는 아재 낭만이 그득한 곳에서 와이프랑 나는 진짜 뷔페 처럼 여러번 음식을 가져다 먹으며 배부른 아침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둘이 배터지게 먹고 13,000원 이라는 가성비 넘치는 금액은 "난 오늘도 절약했어"라는 근거 없는 뿌듯함 까지 느낄 수 있었다.
식사 이후 집에와서 와이프랑 아이스크림 먹고 헬스가서 운동하고 집에와서 낮잠 잠시 자고 스벅에 와서 브런치를 쓰고있다. 진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데 지금과 같은 이직 휴가를 여러번 겪다 보니 사실 이 행복도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아서 마냥 행복하지 않다.
결국 다음주부터는 새로운 회사에 출근해야 하고, 거기서도 나한테 주는 돈에 적합 또는 훨씬 많은 일을 시켜서 나를 가성비 있게 사용할 것이다. 그러면 또 힘들 것이고 이렇게 살아 뭐하나 라는 생각은 금방 또 나를 찾아올 것이다.
평생 지금처럼 살 수 있다면 내 삶과 마인드를 여기에 맞춰 세팅하는데 이게 지금 일시적인 상황이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분이다. 다음주부터 실무로 돌아가는 현실을 직시하고 살짝살짝 준비도 하고 있다. 얼마전 있었던 구글의 AI활용 검색 및 자사 서비스 강화 계획에 대한 발표 영상도 보고 새롭게 옮기는 회사의 서비스 형태나 구조 같은 것들도 조금씩 보고있다.(진짜 조금 보고 있다.)
유병장수 시대에 40대 중/후반부터 시작될 월급 없는 삶을 준비해야 하는 이런 시대에 살면서 노후를 준비하려면 월급의 60% 이상을 저축 또는 투자하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연금저축이니 IRP 이런거 비교를 해가면서 연금보험도 들고 또 현재를 대비하기 위해 저축도 하고...맨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만 준비하며 현재를 참아내야 하는 삶이 너무 싫게 느껴진다. 그래서 지금의 달콤한 백수 생활도 마냥 즐겁지 못하다. 미래를 걱정하면서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것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그냥 삶 전체에 대한 회의 같은 것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위에서 말한 회의감을 간략히 표현해보니 지금 이 글의 제목이다.
"평생 백수일 수 없기 때문에..."
더 하고 싶은 말이 명확히 있지만 딱히 제목에 적합하지 않은 말이라서 ...으로 흐려놓았다. 끝없는 욕심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욕심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 미천한 존재의 삶이라는 것이...지치고 힘이든다.
요즘의 내 기준에서 보면 사랑, 나눔, 배려, 희생 이런 것들도 결국 다 욕심이다. 왜냐면 이 모든 것들을 내 스스로의 의지만 가지고 할 수 도 없으며, 결국 내 희생과 기여가 어느정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라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진짜 무조건 적인 그리고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한없이 나누고 배풀기만 해도 좋은게 있다면 좋겠지만...현재까지의 인생에서 그런건 없었던 것 같다. 위인전에 나오는 분들이 아니고서야 그런 경우는 잘 없는 것 같다.
취미 생활이나 어떤 다른 즐거움과 풍요로 삶을 채워 나가며 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더하는 것 역시 살아내기 때문에 억지로 해야하는 의무감 같은 생각이 든다. 안그러면 너무 힘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