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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꾸미 Feb 11. 2022

퇴사한 지 1년, 아직도 부모님께 비밀인 사연

“나 퇴사한 지 1년 됐어. 근데 아직 부모님이 모르셔.”

라고 이야기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더 놀란 건 건 바로 나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쯤 됐으면 내 인생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나이이고 그것에 대하여 부모님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과의 소통을 단절하기를 선택한 것도 좋은 것은 아니기에 나 역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2017년 추운 겨울, 야심한 시각에 어머니가 나를 부르셨다. 가서 보니, 아빠가 나에게 잠깐 앉아보라고 했다. 그 자리는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무섭게 추웠다. 아빠가 지금부터 한 달 내에 취업을 하지 못하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순간 나는 엄청난 수치심이 느껴졌다. 내 나이가 26살이나 되었는데 진로까지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인생이란 말인가? 그리고 취직이 마음처럼 쉽게 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간을 정해놓고 그때까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압박을 주는 것도 나에게는 가혹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더 후회가 되는 것은 나에게 부모님을 저항할 힘이 없었다는 것이다. 수능을 보고 내가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는 것을 시작으로 나는 자유로워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과거의 역사에서 보면 자유를 얻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희생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내 삶의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독립을 하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것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날 난 하염없이 땅만 쳐다보며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알겠어요”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돌이켜서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나에게 부모님은 소통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무섭고 강압적인 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서 경제적으로도 독립을 하고 살아가지만 정서적으로는 부모님에게서 분리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바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부모님이 원하는 조건의 결혼 상대를 만난다. 나의 어느 지인은 20대 중반의 나이이지만 본인 방의 문을 마음대로 닫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 놀랐지만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최근에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다. 사랑 없이 결혼한 두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이후 두 주인공은 서로 진짜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가족에게 얽매이기보다는 본인들의 감정과 생각을 더 존중하며 살자는 조건의 계약을 하며 결혼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 내용이 아직 부모님에게 휘둘리는 나에게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나도 아직은 부모님을 이길 힘이 스스로에게 없다. 아니, 삶의 가난, 치열함과 혹독함을 많이 느끼며 경제적 안정성을 가장 중요시하며 살아온 부모님의 가치관을 이제 와서 바꾼다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기지 못할 싸움에 내 감정과 시간을 쏟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부모님께는 나의 퇴사를 말씀드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퇴사의 이유를 아주 멋들어지게 설명할 자신도 없다. 난 그저 방황할 시간이 필요하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누군가 나에게 부모님 앞에 왜 떳떳하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느냐고 비겁하다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의 주인으로서 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의 생존 방식을 택한 것이다. 나의 퇴사 일기는 부모님의 기에 눌려서 아무런 힘도 못쓰던 나약한 내가 이 세상에 두 발로 힘껏 일어서는 홀로서기에 대한 내용이다. 지금도 과거의 내가 나 자신에게 자꾸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매일 속삭이고 있다. 나의 싸움의 대상은 사실 부모님이 아닌 바로 나 자신에 대한 것이다. 나는 이 싸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함으로써 나와 같이 방황하는 특히 30대의 청춘들에게 공감과 위로와 그리고 희망이 되기를 소망한다.


아빠, 제 인생의 주인은 저예요. 넘어지고 아프더라도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리고 좀 방황하면 어때요. 제 인생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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