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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의 그늘 Oct 17. 2023

매주 도서관 가는 일기: 클래식으로 전쟁을 멈춘다면

23.08.12


얼마 전 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인 <사이렌>을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갯벌에서 장작을 패고 ‘전투’를 하는 출연진들의 멋진 근육! 다부진 정신! 우리 주변을 대단한 사람들이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멋짐에 감동까지 받으며 혼자 앉은자리에서 얼마나 꺅꺅거렸는지 모른다. 가만있을 수 있냐고. 멋있는 거 한대잖아, 저 언니들이.


<사이렌>을 보는 동안 은밀이 좋아했던 부분이 하나 있다. 어쩐지 숨죽여 지켜봐야 할 상황일 때마다 배경음악으로 <죽음의 무도>가 연주되었던 것이다. <죽음의 무도>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음악이 재생될 때마다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사이렌>을 볼 때가 아니더라도 이따금 미디어에서 내가 아는 클래식 음악을 발견할 때는 정말이지 남다르게 기쁘다.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면서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지가 2년이 조금 넘었기 때문이다. 클래식의 ㅋ자도 모르던 내가 사이렌에서 <죽음의 무도>를,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 무반주 파르티타를, 카르멘 판타지를 발견하는 재미에 푹 빠져 클래식의 역사를 찾아 도서관의 서고를 기웃대는 시간이 늘었다.


<클래식으로 전쟁을 멈춘다면>이라는 제목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는 쉽지 않았다. 아주 얇은 책이라 재미가 있을지 걱정이 되었는데, 전부 읽고 나니 생각보다 많은 재미를 얻었다.


이 책은 <다른> 출판사의 ‘지식 더하기 진로’ 시리즈 중 하나이다. 그래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사이사이에 음악과 관련된 분야와 탐색할 수 있는 진로, 음악 관련 직업 소개 및 현업 인터뷰 등이 실려있다. 책의 들어가는 서문도 “음악가가 되길 망설이는 10대에게” 로 시작한다.


책의 목적 그대로 음악가가 되길 망설이는 청소년에게도 추천할만한 도서이지만, 이제 클래식에 막 입문하여 음악이라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둘러보길 원하는 사람에게도 알맞은 책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만큼 설명이 어렵지 않고 쉽다. 적당한 깊이에서 얼른 발을 빼기 때문에 지루하지도 않다.



책은 클래식에만 한정되어 기술하지는 않았으나, 내가 특별히 재미있다고 느낀 부분은 전부 클래식을 주제로 한 질문과 대답이었다. 그중 첫 번째는 바로 이 질문이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똑똑해질까?


이미 모차르트는 똑똑한 아이를 만드는 연금술사로 정평이 나있다. ‘태교음악’ 네 글자를 검색하면 ‘모차르트’로 자동 변환되기라도 하듯이 그의 음악이 줄줄 나온다. 이런 속설은 언제 시작되었으며 근거는 있는 것일까?


시발점은 과학 잡지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이었다. 그런데 논문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1. 첫 번째 팀은 교수가 질문자에게 편안하게 말을 걸었다.

2. 두 번째 팀은 그냥 가만히 앉아있게 했다.

3. 세 번째 팀은 모차르트 피아노 음악을 들려주었다.


위 행동을 10분간 하게 한 후 공간 추리력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모차르트 음악을 들은 세 번째 팀의 성적이 가장 좋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수능 시험이 아닌 공간 추리력 테스트였다!)


그러니까, 모차르트의 음악인 것도 맞고 성적이 좋은 것도 맞는데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똑똑해진다 “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연구의 내용이 변질되고 모차르트 광풍을 일으켰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연구 결과가 가져온 광풍 덕분에 음악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후 시행된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모차르트 음악만이 뇌를 활성화하는 것은 아니었다. 주로 밝은 분위기의 빠른 박자의 음악을 들으면 문제 수행 능력이 좋아지는데, 평소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들일수록 더 효과가 좋다고 한다.




두 번째 재미있는 질문은 “음치도 성악가를 할 수 있는가”였다.


실제로 폴로렌스 포스터 젠킨스라는 성악가는 44세에 첫 리사이틀을 열며 데뷔했다. 그런데 그녀는 심각한 음치였다고 한다. 피아노는 아주 잘 쳤지만 노래를 하면 맞는 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지대히 커져서 (대체 어떻게?) 결국 미국의 거대 홀인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열게 되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표는 매진된 데다 그 표를 구하고 싶은 사람 2천여 명이 카네기 홀 밖에 진을 칠 정도였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해피엔딩 같지만, 글쎄. 관심에 비례해 음치인 성악가에게 쏟아진 비평은 엄청나게 가혹했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젠킨스는 카네기 홀에서의 공연이 끝난 지 이틀 만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한 달 뒤 7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음치도 성악가를 할 수 있는가?


나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다양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적어도 그녀가 공연을 했던 1944년에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아주 짧지만 음악가라는 직업 정체성에 대한 글이 있다. 이를 읽고 많은 생각을 했다.

음악가의 직업 정체성은 어쩌면 그냥 ‘음악’ 일지도 모르겠다. 모두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 음악 활동을 하며 자신의 이상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 음악가의 일이 아닐까.


책에 기술된 바에 따르면 유명한 클래식 음악가들 대부분 직업이 여러 개였다. 바흐는 오르가니스트인 동시에 지휘와 작곡을 했다. 슈베르트도 과외를 하거나 교사로서 일하기도 했지만 인생 대부분 친구들의 후원을 받는 생활을 했다.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지휘를 하고, 손열음은 음악 칼럼집을 썼다.


그래서 추측컨대, 음악가들은 여러 개의 직업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분명 평생 연주자의 정체성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조성진이 지휘를 하거나 손열음이 칼럼집을 출간했다고 해서 그들을 피아니스트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다는 것이다.


음악인을 꿈꾸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고민을 한다. 돈을 못 벌면 어떡하지? 유명세를 떨치고 공연을 성사시키는 일부 연주자를 제외하면, 역사상 음악과 관련된 직업이 경제적 안정성을 가지기는 늘 쉽지 않았다.


그래서 책은 연주자 말고도 다양한 음악 관련 직업을 제시하는 건지도 모른다. 책에는 음악 치료사, 유아 음악 지도사, 음악 학자, 음악 평론가, 연주자, 지휘자, 악기 제작자, 음향 감독, 공연 제작자 등 다양한 음악 관련 직업을 소개한다. 음악인의 정체성은 음악 그 자체라는 말이 유난히 와닿는다.


직업 선택에 경제성이 유일무이한 기준이 된 현대. 꿋꿋이 자신의 이상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은 무척이나 고독하겠지. 그들이 선택한 음악이 언제나 자신의 묵묵한 버팀목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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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으로 전쟁을 멈출 수 있을까? 처음 책을 빌릴 땐 당연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즉시 존 레넌의 <Imagine>을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소리 내어 평화를 바랄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준 그 음악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떠올려보자. 다니엘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유대인이고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단원은 아랍과 이스라엘 청소년들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아랍 국가들 사이의 정황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퇴고를 하는 지금 이스라엘은 또 다른 전쟁을 하고 있다.) 40년 넘게 전쟁과 평화 협정이 반복되는 분쟁 상황에서 다니엘은 왜 이런 오케스트라를 창단했을까?


자신의 아버지들이 전쟁에서 적으로 만나 싸웠는데 자신들은 절친한 사이가 되어 연주하는 것이 신기하다는 단원으 인터뷰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의 인류애에 대한 신념을 느낄 수 있었다.



모르긴 해도, 다니엘은 음악으로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의 인류애에 대한 신념은 음악으로 연주되는데, 유튜브에서 이 오케스트라 공연 몇 개를 볼 수 있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상 하나를 링크한다.


https://youtu.be/CEEfjddzCPI


음악가는 자신의 음악으로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음악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 원수를 친구로 만드는 기적 같은 일 말이다.


책의 마지막 문단으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한다. 오만가지 문제로 들끓는 지구에 차라리 평화라도 내려앉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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