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거절이 죽기보다 싫을까
"역시 우리 지안 씨는 말 안 해도 알아서 다 하네. 정말 착해."
부장님이 툭 던진 그 말 한마디에 내 손가락은 다시 키보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눈은 침침하고 허리는 끊어질 듯했지만, 착하단 말 한마디는 마법 주문처럼 내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묶어버렸다.
이 기분, 낯설지 않다. 아주 오래전, 백 점 맞은 시험지를 들고 갔을 때 환하게 웃던 엄마의 얼굴을 보며 느꼈던 그 안도감과 닮아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만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투정을 부리고 싶을 때도, 가지기 싫은 장난감을 사촌 동생에게 양보해야 할 때도 나는 웃었다.
"지안이는 어쩜 저렇게 순하고 착할까"라는 어른들의 칭찬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내 안의 진짜 마음들을 하나둘씩 깊은 우물 속에 던져버렸다.
그때 배운 순응의 기술은 사회에 나와서 빛을 발하는 듯했다. 상사가 무리한 업무를 던져줘도, 동료가 자기 일을 슬쩍 떠넘겨도 나는 "네, 제가 할게요"라며 웃었다.(겉으로만)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정작 내 안의 진짜 나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거절을 하면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일 잘하고 성격 좋은 내 완벽한 이미지가 깨질까 봐 나는 오늘도 절벽 끝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었다.
밤 11시,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 불 꺼진 복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부장님의 칭찬을 듣기 위해 일하는 걸까, 아니면 실망하는 표정을 보지 않기 위해 도망치는 걸까. 칭찬은 나에게 동기부여가 아니라, 나를 옥죄는 사슬이었다.
어릴 적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그 칭찬을, 나는 서른이 넘은 지금도 타인의 입술을 통해 갈구하며 영혼을 갈아 넣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은 영혼이 빠져나간 껍데기 같았다. 이제는 안다. 내가 그토록 집착했던 '착한 지안 씨'라는 가면이 사실은 나를 서서히 죽이고 있었다는 것을. 내일은 부디, 타인의 칭찬 없이도 내가 나를 견딜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남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선함이 아니라 자기 유기일 겁니다. 타인의 만족을 위해 당신의 에너지를 다 써버리지 마세요.
거절한다고 해서 당신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건강한 거절은 당신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오늘은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 나 자신에게 먼저 다정한 사람이 되어주세요.
오늘 하루 중, 정말 하기 싫었지만 좋은 평판을 잃을까 봐 억지로 수락한 일은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의 당신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예: "억지로 착한 척 하지 않아도 돼. 그냥 너답게 울고 웃어도 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