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이별 여행
상훈과 헤어진 지 일주일.
나는 '나를 찾아 떠나는 이별 여행'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걸고 강릉행 기차에 올랐다. 누가 봐도 이별의 아픔을 성숙하게 극복하는 멋진 여자의 모습이어야 했다.
하지만 가방 안에는 갈아입을 옷보다, 사진 촬영을 위해 챙긴 얇은 시집 한 권과 베스트셀러 에세이가 더 묵직하게 들어 있었다.
강릉의 푸른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다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창가 쪽 가장 사진이 잘 나오는 명당을 사수하는 것이었다.
나는 삼각대를 세우고 우연히 찍힌 듯한 뒷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수십 번 자리를 고쳐 앉았다.
[떠나보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제야 진짜 나를 마주합니다. � #이별여행 #강릉바다 #나를찾는시간]
피드에 올릴 사진을 고르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정작 눈앞의 바다는 스마트폰 액정 속보다 더 흐릿하게 느껴졌다. 사진 속의 나는 처연하면서도 당당해 보였지만, 현실의 나는 찬바람에 콧물을 훌쩍이며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관광객일 뿐이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야심 차게 준비한 독서 컨셉을 고수했다. 침대 위에 책을 무심하게 던져놓고, 은은한 스탠드 조명을 켰다.
세 페이지쯤 읽었을까. 내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라기보다, 내 스토리에 올렸을 때 깊이 있어 보일 법한 문장을 발견했다.
"상처를 마주할 용기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이거다. 나는 얼른 그 페이지를 찍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오늘 밤, 이 문장이 나를 살리네요.]라는 오글거리는 멘트도 잊지 않았다. 사람들은 금세 답장을 보내왔다.
"지안 님, 역시 깊이가 있으시네요",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며 안도감이 밀려오는 순간, 지독한 피로가 쏟아졌다. 사실 그 문장 뒤의 내용은 궁금하지도 않았다. 나는 책을 덮지도 못한 채, 아니 세 페이지만에 냅다 잠이 들어버렸다.
하지만 새벽녘, 속이 뒤틀려 잠에서 깼다. 쿨한 여행자를 연기하며 억지로 먹었던 비싼 해산물 파스타가 얹힌 모양이었다.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붙잡았다.
"우욱..."
쏟아져 나온 것은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과 함께, 내가 하루 종일 정성껏 가공해 올린 거짓된 감정들이었다. 거울 속에는 번진 화장과 헝클어진 머리를 한, 전혀 쿨하지 못한 내가 서 있었다.
세 페이지만 읽고 덮어버린 책처럼, 나는 내 슬픔조차 제대로 끝까지 읽어낼 용기가 없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꾸민 이 여행이, 사실은 나를 가장 비참하게 만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우리는 가끔 슬픔조차 남들에게 근사하게 보여주려 애씁니다.
하지만 세 페이지만 읽고 덮어버린 책은 우리에게 아무런 지혜도 주지 못합니다. 당신의 아픔을 컨텐츠로 소모하지 마세요.
억지로 괜찮은 척하는 사진을 찍기보다, 차라리 엉망진창으로 울며 잠드는 편이 당신의 영혼에는 더 건강할지도 모릅니다. 진짜 회복은 카메라 렌즈 밖에서 비로소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