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치 가짜 인생이 0바이트가 된 날
월요일 아침 출근길.
강릉에서의 끔찍했던 주말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몸을 이끌고 지하철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하지만 내 시선은 앞을 향하는 대신, 오직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액정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젯밤 올린 독서 스토리에 누가 하트를 눌렀는지, 답장은 몇 개나 왔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혹시 상훈이가 내 스토리를 염탐하진 않았을까? 새로고침을 연타하며 인도를 걷던 그 순간이었다.
"앗, 죄송합니다!"
모퉁이를 돌며 마주 오던 사람의 어깨와 세게 부딪혔다.
앗차 하는 순간, 손에 느슨하게 쥐어져 있던 스마트폰이 허공을 갈랐다. 이내 아스팔트 바닥 위로 '쩌적' 하는 불길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급히 주워 든 스마트폰은 거미줄처럼 처참하게 금이 가 있었고, 화면은 이미 새까맣게 죽어버린 뒤였다. 전원 버튼을 아무리 길게 눌러도 진동조차 울리지 않았다.
까맣고 차가운 액정 위로, 핏기 하나 없이 초조함에 질린 내 얼굴만이 거울처럼 비치고 있었다. 늘 보정 필터 뒤에 숨겨두었던,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진짜 내 민낯이었다.
점심시간을 쪼개 달려간 서비스 센터 기사님의 선고는 무자비했다.
"액정만 나간 게 아니라 메인보드가 파손됐네요. 안타깝지만 안에 있던 데이터는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네? 복구가 안 된다고요? 그 안에 제 지난 3년 치 사진이랑 메모가 다 들어있는데요! 어떻게든 살려주시면 안 되나요?"
"클라우드 백업을 안 해두셨으면 저희도 방법이 없습니다. 기기 자체를 교체하셔야 해요."
서비스 센터 문을 열고 거리로 나오자, 세상과 나를 연결하던 유일한 탯줄이 툭 끊어진 기분이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수백 번 각도를 맞춰 찍었던 파인다이닝 사진, 비싼 호캉스 인증샷, 그리고 내가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 과시하기 위해 쌓아두었던 그 모든 가짜 영광의 기록들이 한순간에 0바이트로 증발해 버렸다.
손에 들린 깡통 같은 기계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당장 커피 한 잔을 살 삼성페이도 없었고, 버스가 언제 오는지 확인할 앱도 없었으며, 이 짜증 나는 상황을 하소연할 카톡창도 없었다. 완벽한 고립이었다.
동시에 기묘하고도 지독한 허무함이 밀려왔다. 피드에 박제해 둔 사진들이 전부 사라지자, 내 삶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남들에게 증명할 사진이 없다면, 내가 먹고 마시고 즐겼던 그 시간들은 과연 존재하긴 했던 걸까?
그동안 내가 목숨 걸고 지켰던 것은 내 삶이 아니라, 언제든 메인보드 고장 한 번에 날아가 버릴 한낱 디지털 쪼가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그제야 내 뺨을 세게 후려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우리는 스마트폰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고, 남들의 반응을 통해 내 삶의 가치를 매기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이 먹은 맛있는 식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SNS에 올리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이 여행지에서 느낀 바람결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디지털 기록이 모두 날아가 버려도 끝까지 당신 곁에 남는 것, 그것이 당신의 '진짜 삶'입니다.
지금 당장 스마트폰이 고장 나 모든 사진과 데이터가 사라진다면, 당신의 삶에서 가장 아쉬운 '진짜 추억'은 무엇인가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인증샷 말고, 당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