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머리맡을 더듬어 스마트폰을 찾는 대신,
가만히 천장을 보며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오늘 컨디션은 좀 어때? 목이 마른가? 배가 고픈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나의 아침은 타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밤사이 누가 내 피드에 하트를 눌렀는지, 단톡방에서 내가 소외되진 않았는지 확인하느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액정부터 쓸어 넘겼다.
내 기분과 가치는 네모난 화면 속 남들의 반응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탔다. 나는 내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보이지도 않는 관객들의 박수를 구걸하며 춤을 추는 피곤한 삐에로였다.
하지만 폰의 액정이 박살 나고, 상훈과 헤어지고, 엄마의 된장찌개 앞에서 무너져 내렸던 그 치열했던 시간들을 지나, 나는 마침내 그 소란스러운 무대에서 내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눈부신 봄 햇살이 거실 깊숙이 밀려 들어왔다. 나는 습관처럼 커피 물을 올리고, 식탁에 앉아 창밖으로 흔들리는 나뭇잎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평화로운 주말 아침을 사진으로 찍어 올릴 생각도, 누군가에게 '나 이렇게 여유롭게 잘살고 있어'라고 증명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저 커피 향이 좋고, 햇살이 따뜻하다는 사실만이 내 안을 가득 채울 뿐이었다.
문득 내 이름의 한자를 허공에 천천히 적어보았다. 알 지(知), 편안할 안(安).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 평범한 이름이 새삼스럽게 심장을 두드렸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언제 상처받는지, 내 결핍과 찌질함까지 오롯이 '알게 되었을 때(知)',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한 '편안함(安)'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나는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깨달았다.
누군가 나에게 "이제 인정중독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나요?"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자신은 없다.
나는 앞으로도 종종 남의 성공을 보며 배가 아플 것이고,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상처받아 밤잠을 설칠지도 모른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달라졌다. 불안이 밀려올 때마다 남들의 '좋아요'라는 진통제를 찾던 과거의 나는 이제 없다.
나는 상처받은 내 마음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들여다볼 힘이 생겼고, 무리한 부탁 앞에서는 기꺼이 미움받을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
타인의 칭찬이라는 가짜 트로피 없이도, 나는 이미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식은 커피를 마저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밀린 이불 빨래를 하고, 동네 도서관에 가서 세 페이지가 아니라 마지막 장까지 푹 빠져 읽을 추리 소설을 하나 빌려올 생각이다. 화려한 해시태그도, 부러움 섞인 댓글도 없는 완벽하게 심심하고 평범한 일요일.
나는 이 시시한 나의 진짜 삶이, 눈물 나게 마음에 든다.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길었던 저의 고백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인정중독을 앓으며 살아갑니다.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사랑을 얻기 위해 진짜 나를 지워버린다면,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남들의 기대라는 맞지 않는 옷을 벗어 던지세요. 조금 촌스럽고 투박하더라도,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만의 보폭으로 걸어가는 그 길을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