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잡지 기자로 일을 시작했다.
인쇄매체는 이미 1990년대부터 사양산업이라 불렸으니 나의 앞길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도 나는 종이를 포기하지 못하는 고집쟁이였다. 망해가는 산업이면 어떤가, 내가 이토록 좋아한다면 그 끝자락의 일원이 되는 것도 값진 경험이라 여기던 시기가 있었다.
이같은 배경 때문일까, 각종 글쓰기 직무를 대체하는 AI의 발전이 내 귀에는 그리 위협적으로 꽂히지 않나 보다. 최근 UX Writing 툴이 출시되었다는 소식도 반갑게만 들렸던 것을 보면.
나는 실무를 하면서 최소한의 기계화된 공정을 바랐던 순간이 제법 있다. 자동완성기능처럼 기계적인 수정이 가능하다면 업무 효율성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서비스마다 자주 사용하는 워딩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이를 하나하나 고치면서 발생하는 공수와 오류 가능성은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UX 디자이너나 string 담당 PM, 개발자도 시스템에 등록된 문구를 곧바로 반영할 수 있다.
물론, 그런 툴을 적용해도 문제되지 않는 문구에 한해서다. 예를 들면 만보 걷기를 만 걸음 걷기로, 물 섭취하기를 물 마시기로 고치는 식이다. 너무 마이너한 수정이라 효율성을 운운하기 부족해 보일까? 경험상 UX Writing에 있어 마이너한 수정이란 없었다.
그렇다면 기술의 발전을 환영하는 사이, 내 일자리가 사라질 위험은 없을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은 이미 성큼성큼 앞서 가고 있고, 그것을 적절하게 취사선택하는 것이 나의 몫이라고 본다. 기술이 대체할 수 있는 글쓰기는 인풋과 아웃풋이 명확한 오퍼레이터의 역할에 그친다. 혹시 더 발전하더라도 소비자의 심리와 감성을 고려한다면,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UX Writer의 업무를 단순 검수자로 한정한다면 기술의 발전은 충분히 두려운 일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UX Writing은 단순 검수가 아니다.
줄곧 인문학만 공부한 실무자의 안일한 시선일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주객전도없이 기술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업무 축소가 아닌 효율의 측면에서 지금을 바라보고 싶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 또한 UX Writer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