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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준 May 10. 2023

인생에 사고가 났다

인생에 브레이크를 밟는 법


차사고가 났다. 동생과 내가 운전을 처음 배우던 시기였다. 한적한 주차장에서 운전연습을 하던 중 동생이 가로수를 들이박았다. 다행히 사람도 나무도 멀쩡했지만 우리 차의 앞범퍼는 크게 파손됐다. 운전미숙으로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걸 악셀을 밟아서 생긴 사고였다. 동생은 두려움에 한동안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우리는 때로 인생에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 악셀을 밟아버린다. 뒤늦게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을 때 늦은 만큼 빠르게 뒤따라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과도하게 많은 수업을 신청했고, 뒤돌면 쌓인 과제를 쳐내느라 밤샘작업을 밥먹듯 했다. 그만큼 빠르게 실력이 느는 게 보였기에, 나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그러다 꽝. 인생에 사고가 났다.


심한 불안과 공황 증상으로 휴학을 했다. 반년을 쉬고 돌아간 학교생활에서도 1년을 넘게 고전했다. 응급실을 한 해에만 3번을 갔고, 지속되는 가슴 통증에 24시간 심전도 기계를 달고 학교 수업을 간 적도 있었다. 거의 2년이 넘게 인생이 지체됐다.


브레이크를 밟았다면 나지 않았을 수도, 혹은 경미한 사고로 끝났을 수도 있는 인생의 사고를 겪었다. 그 이후 건강은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가 되었다. 또한 삶이 정신없이 빠르게 간다는 생각이 들 때는 멈추고 재정비를 해야함을 깨달았다. 지난 시간동안 내가 어디를 향해 왔는지, 앞으로는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 재정비를 해야만 제대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재정비 기간동안 자연을 가까이했다. 싱싱한 야채가 들어간 샌드위치나 참외, 사과같은 제철 과일로 아침식사를 했다. 커피 대신 녹차나 홍차, 부드러운 맛을 느끼고 싶을 때는 밀크티를 마셨다. 아무리 바빠도 매일 공원으로 향했고, 밤낮 관계없이 하루에 한 번은 꼭 산책을 즐겼다.


직접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두부조림, 메추리알조림 같이 간단한 반찬부터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토마토에 계란을 넣고 굴소스에 휘리릭 볶아 토마토계란밥을 해먹기도 하고, 애호박을 송송 썰어 계란물을 입혀 애호박전을 해먹기도 했다. 남은 애호박을 감자, 당근과 함께 깍둑깍둑 썰어 카레를 해먹기도 하고, 나중에는 조개를 해감까지 해가며 봉골레 파스타를 해먹을 만큼 요리에 즐거움을 느꼈다.


자연스레 제철 채소, 제철 과일을 알아갈 수 있었다. 추운 겨울이 오면 달달한 무를 넣은 고등어 조림이 맛있다는 걸, 겨울 딸기는 간단히 으깨서 설탕 조금 넣고 두었다 우유만 부어도 새콤달콤 맛있는 생딸기라떼가 된다는 걸 배웠다.


봄이 오면 지글지글 삼겹살을 구어 향긋한 달래무침이나 봄동 겉절이와 함께 먹는 기쁨을 알았고, 여름에 요리하는 게 덥고 지칠 땐 비빔면 한 봉지 끓여 아삭한 오이를 채썰어 먹으면 한 끼 뚝딱이라는 걸, 여름철 복숭아의 달콤함은 떨어진 입맛도 돌아오게 한다는 것을 느꼈다.


초반에는 재료의 비율이 헷갈려 포스트잇에 써 주방 상부장에 붙여 놓고는 했는데, 어느 날은 가스를 확인하러 오신 점검원께서 그 메모를 보셨다. 혼자 사는데도 잘 챙겨먹는 게 예쁘고 보기 좋다는 따뜻한 말을 들었는데, 그때는 새로운 환경에서 막 자라난 새싹같은 쑥스러운 마음 뿐이었다.


시간은 흘러 삶에 잘 가꾼 하루들이 점점 자라났고 싱그러운 마음이 생겨났다. 자신의 삶을 정성껏 가꾸는 사람의 생기가 스스로에게 느껴졌을 때, 그 기분은 물기를 머금은 이슬마냥 촉촉했다. 인생에 브레이크를 밟는 법은 스스로를 잘 돌보는 법과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바쁜 사회 속에서 달리고 달리다 급히 브레이크를 꽉 밟아 버린다. 악셀이 아니라서 다행이긴 하지만, 급브레이크는 우리를 마모시키고, 손상시키며, 기능의 저하를 불러온다. 매일 입에서 한시도 떼지 않는 커피, 자주 찾는 자극적인 음식들, 틈만 나면 입에 무는 담배, 밤마다 따는 맥주캔. 이런 것들이 모두 우리가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매일 밟는 급 브레이크이다.


고카페인, 과식, 흡연, 음주, 충동 소비, 지나친 게임과 인터넷 사용. 빠르고 즉각적으로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은 모두 급 브레이크 인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밟아대던 급 브레이크들은 결국 서서히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갉아 먹고, 우리를 아프게 하며, 돌이킬 수 없는 건강의 악화를 가져온다.


인생에 사고가 난 뒤 해결하려면 더욱 힘겨운 시간들을 버텨야 하고, 최악의 경우엔 해결이 불가능해 질 수도 있다.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사고가 생길 수는 있지만, 나는 우리가 피할 수 있는 사고는 피했으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매일 조금씩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알아가는 것이다.


스스로를 돌본다는 건 어떤 상황에서건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다. 힘들어서 아무렇게나 살고 싶은 마음,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무기력한 마음이 들어도 스스로를 온화하게 다독여주자. 작은 새싹을 키우는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본다 생각하면 어렵지 않다. 새싹이 건강하게 크는 데에는 깨끗한 물, 따스한 햇살, 선선한 바람이 필요하니까, 우리도 신선한 음식을 먹고 햇살아래 바람을 즐기며 적당한 운동을 하면 된다.


어떤 신선한 음식을 먹을지, 어떤 공원에서 산책을 할지 고민하는 일은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 버터보다 아보카도의 맛에 빠질 수도 있고, 인터넷 세상보다 마음에 드는 풍경을 가진 공원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자연이 주는 건강한 자극들은 일상 속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을 깨워주고, 우리는 그 활기를 가지고 어떤 것이든 시도해보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인생의 레이싱이 아닌 진정한 드라이브를 즐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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