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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준 May 24. 2023

행복을 눈앞에 꺼내놓는다면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일요일 아침, 갓 찐 식빵을 먹으러 40분을 달려 카페로 향했다. 오븐에서 고온으로 구운 식빵이 아닌 찜기에서 촉촉이 쪄서 나온 식빵은 처음이었다.


카페는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간판하나 걸려있지 않은 오래된 주택이었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주인의 손길이 닿아 깨끗한 흰 벽과 커튼, 따뜻한 분위기를 주던 나무 식탁과 의자, 따스함이 스며든 조명들. 잘 정돈된 집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자 창밖으로는 봄을 맞아 초록 잎들을 뿜어낸 나무가 보였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날이라 날씨는 흐렸지만 그 차분한 분위기가 오히려 좋았다.


조금 기다리니 나무 찜기와 따뜻한 커피를 직접 가져다주셨다. 집에 초대한 손님을 대접하듯 빵과 식기를 테이블에 정성스럽게 놓아주셨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찜기에서 면포를 살포시 걷어내니, 폭신폭신한 식빵이 드러났다. 조심스레 손으로 찢어 직접 만드신 버터와 단팥 소를 발라 먹었다.


살짝 비를 맞아 쌀쌀했던 몸에 온기가 들어찼다. 삶에 치여 축 처졌던 몸에 에너지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밀가루, 소금, 이스트가 이렇게 영양분이 가득했던가. 아마 정성, 따뜻함, 행복이라는 감정적인 재료들이 정서적 허기를 따스히 채워준 것이겠지.


인생에서 직업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이런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따뜻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일을 정성을 다해 한다는 것. 부부의 모습을 통해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진짜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또한 행복을 눈앞에 꺼내놓는다면 이런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하진 않아도 정돈된 공간, 따스한 온도의 조명, 갓 찐 따뜻한 빵, 그걸 함께 즐길 사랑하는 단 한 사람. 정말 그게 다였다.


권위 있는 직업을 가지지 않아도, 환한 조명이 비추는 궁궐 같은 집이 아니더라도, 꽃등심 스테이크가 나오는 코스 요리를 먹지 않아도, 대단히 친구가 많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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