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많은 혜택을 가지고 태어난다. 또 어떤 사람은 가진 것 없이 태어난다. 여기서 말하는 혜택이란 건 주로 돈, 외모, 집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하며 우리가 스스로 혜택이라고 이름 붙인 요소이다.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초등학생 때였다. 옆에 앉은 친구의 책상에는 32색 크레파스와 물감 그리고 반듯하게 꽂아진 비싼 붓이 놓여있었지만 내 앞에는 8색 크레파스가 전부였다. 나는 내가 쓸 수 없는 색깔을 친구에게 빌려가며 그림을 완성했다.
자랄수록 내 인생은 불행해졌다. 마치 내게 모자랐던 크레파스 색깔처럼, 가진 것 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겪는 불행은 당연한 운명이었다. 이를 테면 급식비를 못 내서 수치스러웠던 일이나 가난할수록 모든지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했던 일이나 다른 친구들처럼 집에서 생일파티를 할 수 없어 슬퍼해야 했던 일은 모두 가난한 나의 죄였다. 나도 위로받고 싶었다. 많이 슬프냐고, 많이 힘드냐고, 많이 속상했냐고. 그러나 부모님은 나의 감정에 무관심했고 나 역시도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나는 내 거대한 슬픔을 오랜 시간 억누르고 묵인했다.
차마 아파서 바라봐주지 못한 감정들은 63 빌딩처럼 무의식에 천천히 쌓이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러하듯 나 역시 현실의 고통을 외부적으로 해결하려고 애썼다. 좋은 기업에 취업한다던지, 꽤 괜찮은 집으로 독립한다던지, 겉모습을 잘 꾸민다던지, 책을 많이 읽어서 똑똑해지는 방식으로. 이 방법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나의 노력으로 얻어낸 성취감도 행복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하다는 슬픔, 가진 게 없다는 슬픔'의 감정은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았고 마음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치 그것으로는 채워질 수 없다는 듯이 제발 나를 봐달라는 듯이. 그리고 내가 무시했던 내면의 슬픔은 고통스러운 사건들로 현실에 자신을 드러냈고 나는 그때서야 내면을 마주했다.
슬픔은 마음의 준비가 된 나에게 속삭였다. 왜 나만 이토록 가난하고, 거지 같고, 불행해야 하느냐고.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내가 힘들 때 아무도 나를 바라봐주지 않았다고, 내가 그렇게 미우면서 왜 노력하느냐고, 그럴 거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나를 죽게 놔두라고 말이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결핍의 힘으로 살아오는 동안 내가 날이 선 칼날처럼 긴장하는 삶을 살았다는 걸, 외부적으로 발버둥 쳐도 마음이 봐주지 않는 한 내 가난이 영원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묵묵히 참 애썼다고, 참 힘들었겠다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다. 살면서 내 슬픔에 위로다운 위로를 해준 적이 있던가. 내면은 누구도 아닌 나의 작은 위로를 오랜 시간 기다려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슬픔은 녹고 사라져서 강력한 자기 사랑이 되었다.
나는 삶의 진실을 보게 되었다. 나를 이토록 궁색하게 만들고 괴롭고 수치스럽게 했던 가난이라는 고통은 미화할 필요 없이 그저 고통이다. 고통은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한다. 그러나 고통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면이니 자기 사랑이니 하는 것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진정한 마음의 풍요가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또한 앞서 나열한 혜택들을 모조리 가지고 태어났다면 나는 혜택을 혜택으로 인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삶에서 마주하는 고통은 자기 사랑을 위한 레드카펫과도 같다는 걸 나는 이번 생에서 만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