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길 Aug 20. 2019

장봉도 갯티길

선택의 결과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에 있는 장봉도는 손꼽히는 섬 트레킹 명소다. 능선과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숲과 바다가 주는 싱그러움과 상쾌함을 한 것 느낄 수 있어 '걷다 보면 트레킹 천국'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7개의 트래킹 코스인 '장봉도 갯티길'을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분주히 이어진다. '갯티'란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는 드러나는 조간대를 일컫는 말이다. 갯벌과 갯바위가 만나는 중간지점인 모래 갯벌을 인천 섬 주민들은 '갯티'라고 부른다.

장봉도 여행자 센터에 꼽혀있는 안내 책자에 나온 장봉도에 대한 첫머리 소개 글이다. 15여 년 전 장봉도 캠핑을  두 번 왔었다. 내 머릿속 장봉도 이미지이기도 했다. 천국이란 말에 장봉도를 얕잡아 봤다.

장봉도는 마을버스 노선이 하나다. 마을버스의 종점인 건어장 해변에 설치된 원두막 안으로 우리 셋은 기진맥진 들어갔다. 지금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난 더 이상 못 가요. 대충 아무 데나 텐트를 쳐요". 백패킹이 처음인 B의 일그러진 얼굴이 그렇게 말을 했다. 유튜브 동영상 첫 번째 편을 찍고 싶은 J의 눈은 원래 목적지였던 장봉도의 맨 끝, 경치 좋은 가막머리로 가자고 말하고 있었다.

여기부터 가막머리까지는 3킬로미터. 평소 같았으면 후딱 가면 도착할 거리였다. 쓰러질듯  지쳤어도 꾸역꾸역 걷다 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긴 했다. 문제는 가막머리에 이미 누군가가 텐트를 치고 있다면, 3킬로미터를 다시 내려와야 하는 거였다. 어떻게 할 건지 결정을 해야 했다. B는 제발 근처에 자리를 잡자며 온몸으로 땀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말했다. 땅방울의 열기로 일그러진 B의 얼굴이 내 두 눈에 들어왔다.


선착장에서 버스로 5분 거리에 떨어진 옹암 해변에서 버스를 내렸다. 옹암해변은 장봉도에서 가장 큰 유흥가?답게 사람들로 북적였다. 소나무 그늘 아래는 어김없이 사람 키보다 높은 거대한 텐트들이 다닥다닥 자리 잡고 있었다. J는 여기는 도저히 영상 분위기가 안 나온다고 가막머리로 가자고 했다. 이 번 트레킹의 리더인 J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식당에는 소라와 백합 조개 그리고 광어회를 팔고 있었다. 소라와 조개는 장봉도 산, 광어는 노량진 산이다. 소라찜과 조개탕을  시켰다. 지난번에 갔던 무의도의 짧은 트레킹을 상상했다. 나와 B는 소주를 각 1병에 맥주를 더했다. J는 속이 조금 안 좋다고 맥주 두 어잔을 마셨다.

옹암 해변 정류장에는 우리가 같이 내렸던 백패커 여럿이 버스를 다시 타고 있었다. "어 저들은 왜 버스를 타지? 이정표를 따라 걸어가면 되는데..." '룰루랄라'. 우리는 호기롭게 출발했다. 장봉도 이정표에는 방향만 있을 뿐 거리는 나와 있지 않았다. 30도가 훨씬 넘는 여름이었다. 트래킹을 시작하자마자 온몸에서는 열기가 뻗쳐 나왔고, 목은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겨우 해발 160m. 장봉도에서 제일 높은 국사봉에 도착했을 때 이미 체력은 바닥났다. 한낮의 뜨거운 공기와 얼큰하게 오른 술기운 때문에 계획보다 많은 물을 마셔버렸다. 이대로는 내일까지는커녕 목적지에 도달하면 물 한방을 남아 있지 않을 판이었다. 겨우 4킬로미터를 걸었고, 아직도 12킬로 미터가 남았다.  GPS는 "너희들 가막머리까지 오늘 못 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GPS 말대로 방향을 틀었다. 한들 해수욕장까지 1.5킬로미터 정도를 내려와서 물을 보충하고 건어장 해변으로 갔다.

가뜩이나 체력이 약한 B가 다시 배낭을 진다는 것은 무리였다. 나와 J는 배낭을 내려놓고 가막머리까지 후딱 갔다 오기로 했다. 보조 배낭에 DSLR 카메라와 드론, 물 1리터를 넣었다. 건어장 해변에서 가막머리까지는 왕복 6킬로미터다.

"어떤 게 잘 한 선택일까요? 여기에 자리를 잡고 주저앉는 거? 끝까지 다 같이 올라가는 거? 배낭을 내려놓고 형님과 J만 후딱 갔다 오는 거?"

"지금은 모르지,  알게 되겠지. 가막머리에 텐트 칠 자리가 남아 있는지 없는지. 인생에선 선택한 길 다른 편에는 뭐가 있을지 모른다. 오늘은 다르다. 가막머리에 도착하면 선택의 결과를 볼 수 있다"

"그럼 잘 다녀오세요. 저는 좀 자야겠어요" B는 90킬로그램이나 되는 육중한 몸을 원두막 가장자리에 둘러진 툇마루 의자에 던지듯 벌러덩 누웠다.

나와 B는 원래 목적지인 가막머리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무거운 배낭을 벗어던지자 체력이 돌아왔다. 단숨에 가막머리에 도착했다. 노을이 가득했다. 자리는 비었다. "아, 배낭을 메고 왔어야 됐구나!" 마음이 편해졌다. J와 나는 B를 설득하기로 했다.

다시 건어장 해변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막머리는 이미 2팀이 있어. 자리도 많아. 그런데 가는 길 중간에 빈 데크가 있는데  텐트 두 동은 충분히 들어가겠더라. 경치가 죽여. 밤 바다 위로 별이 쏟아질지도 몰라." 막 잠에서 깬 B를 꼬셨다. 셋은 다시 갯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구름이 잔뜩 낀 밤하늘을 뚫고  희리한 달빛이 등 뒤를 비추고 있었다.


여행 Tip

겟티길

총 7코스로 나누어져 있다. 1코스 신선놀이길, 2코스 하늘나들길, 3코스 구비너머길, 4코스 장봉해안길, 5코스 이달인어길, 6코스 한들해안길, 7코스 장봉보물길이다. 자세한 정보는 선착장 근처에 있는 여행자 센터에서 얻을 수 있다.

                                                 

삼목 선착장

주소: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해안북로 847번 길 55

대중교통: 원서 역 -삼목선착장(좌석 307번, 간선 204번, 지선 5번, 지선 2번

선박 운항 문의: 세종해운 032 751 2211, 한림해운 032 7408020










작가의 이전글 안의면, 기금거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