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통 코로나로 극성인 3월의 어느 토요일이다.오랜만에 찬바람도 쐴 겸 유명산으로 백패킹을 나섰다. 세상이 코로나 세상인지라 각자 차로 이동하여, 저녁 5시에 들머리인 배너니 고개에서 만나 산행을 했다. 산행이라야 들머리에서 목적지 활공장까지 1시간 남짓 걷는 게 전부인 짧은 코스다.
후딱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 일찍 유명산을 빠져나왔다. 일행과 인사를 짧게 마치고, 옥천에서 46번 경춘국도를 탔다. 왼쪽으로는 구불구불한 남한강을 끼고, 오른쪽으로는 나지막한 산들을 이리저리 끼고 가는 길이었다. 밤새 산속에서 자동차 앞 유리에 내린 얼룩을 닦으려고 와이퍼 워셔액을 뿌리는 순간, 낯익은 오래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일요일 오전 9시. 여느 때처럼 우리 가족은 서울 근교 계곡으로 야유회를 가는 중이었다. 자동차에서는 라디오 드라마 <추적자>의 내레이션이 긴박한 목소리로 흘러나왔지만, 매주 일요일 아침에 듣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헤드레스트가 없는 의자 사이로 보이는 핸들 오른쪽 바로 밑에는 핸드 기어가 딱 붙어 있었다. 요즘 차에 있는 말뚝 기어자리에는 포장마차에서 설탕을 듬뿍 뿌려 파는 계란 샌드위치 크기와 두께를 가진 카세트테이프가 두어 개 놓여 있었다.
<추적자>가 흘러나오는 라디오 위 쪽으로는 그 커다란 테이프를 넣을 수 있는 네모난 구멍이 있었고, 바로 아래쪽에는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커다란 버튼이 일곱 개 정도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깊이가 앞으로 1 센티나 툭 튀어나온 검은색 버튼이었다.
<추적자>가 거의 끝나갈 무렵, 자동차는 경춘 가도의 어디쯤에서 왼쪽으로 나있는 비포장도로로 들어섰다. 삐거덕 거리며 한참을 들어간 자동차는 커다란 웅덩이를 낀 계곡 옆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가족이 노는 동안 아버지는 근처 초가집을 찾아 나셨다. 마당에 돌아다니는 닭 한 마리를 보고 고르시면 집주인은 직접 잡은 다음, 가마솥에 푹 끓여서 팔았다.
물놀이 후에는 온몸에 오돌토돌 닭살을 돋아가며 한 손에는 닭 다리를 들고 뽀얀 닭백숙 국물을 후륵후륵 마셨던 기억도 생생하다. 깊은 초록 숲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계곡 웅덩이에서 스테인리스 밥그릇으로 송사리나 개구리를 잡은 기억만 있다. 그곳이 눈에 선하지만 어떻게 갈 수 있는지는 머릿속에는 전혀 없다.
자동차 앞 유리 너머로 서울이 보이기 시작하자 잠시 떠올랐던 코로나 추억이 사리졌다. 잠시 잊었던 코로나 걱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자동차 5대가 나를 지나갔지만, 지금 타는 차를 빼면 기억나는 번호판 번호가 하나도 없다. 내 차도 아닌데 머리속에 남아있는 번호가 하나 있다. "서울 나 1485". 1974년도에 아버지가 탔셨던 코로나 자동차 번호다. 왜 그 번호가 아직도 내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았는지는 나도 모른다. 현대자동차 포니 1이 75년도에 출시되었으니 참 오래된 차 번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