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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길 Aug 28. 2018

<큰 배낭 메고> 북알프스 I

낭만트레커 브랜든 in 다테야마

일본의 북알프스는 혼슈 기후현, 도야마현, 나가노현에 걸쳐있는 3,000m 영봉들이 즐비한 히다 산맥의 또 다른 이름이다. 메이지 시대인 1887년에 영국인 금속 가공 기술자 윌리엄 골랜드가 야리가다케에 올랐다. 그  기록을 잡지에 기재하면서 "Japan Alps"의 어원이 되었다. 구로베 알펜루트는 일본 북알프스 중의 하나인 다테야마의 2,500m 고지를 트레킹 대신 케이블카, 고원 버스, 트롤리버스, 로프웨이 등 인간이 만든 여섯 가지 교통 수단으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산악여행 루트다.

다테야마 알펜루트 교통 지도. 출처-알펜루트 공식 홈페이지

비행기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공항을 빠져나갔다. 5월 도야마 공항은 시골 버스 터미널처럼 적막했다. 이 번 여행은 나와 여동생 , 조카 둘 그리고 어머니와 가는 조금은 낯선 조합의 해외여행 이었다.


겨울 내내 쌓인 눈 때문에 도로가 막혔는지  내비게이션이 몇 번이나 막힌길로 안내했다. 어둑어둑해져서야  목적지인 가조쿠무라 캠핑장에 도착했다. 캠프장은 알펜루트 성수기로 북적일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마음씨 좋아 보이는 관리인 할아버지 혼자 지키고 있었다.

미리 주문한 BBQ 세트와 키를 받았다. 관리인 할아버지가 조카들을 불렀다. 통 하나를  내밀며 제비뽑기를  해보라고 했다. 조카들은 물티슈를 하나씩 뽑았다. 아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가 재밌다. 2층 침대 두 개로 구성된 4인용 방갈로는 시설이 좋 않았다. 다만 일인당 10만 원이 훌쩍 넘는 근처 료칸에 비해 한 가족이 지낼 수 있는 숙소가 10만 원대라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양이 적은 아이라도 결코 싸지 않은 가이세키 정식  포함 료칸에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장작불에 함껏 달궈진 철판에서 지글지글 익는 BBQ 는 영하의 날씨에도 입안을 사르르 녹였다.

다테야마를 오르기 전 묵었던 방가로

아침 9시쯤. 알펜루트 케이블카 탑승장 주변은 사람들과 자동차들로 붐볐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국내 관광지만큼은 아니다. 자동차 회송 서비스를 예약한 우리는 탑승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주차장 대신 가까운 회송 서비스 전용 주차장에 차를 맡겼다. 자동차 회송 서비스란 알펜루트 교통수단으로 산을 넘어가는 동안 산 반대쪽 주차장까지 자동차를 배달해 주는 시스다.

예약 시각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출발을 한 시간을 당겼다. 첫 번째 교통수단인 케이블카를 탔다.  일본에서 케이블카는 우리에게 익숙한 강철 로프에 매달려 하늘에서 움직이는게 아니다. 샌프란시스코나 멜버른의 전차와 비슷하지만 차량 자체가 홍콩의 "피크트램"처럼 45도 기울어져 땅으로 가는 교통편이다. 다테야마 역에서 비조다이라까지 해발 차 502m, 평균 기울기 24도, 1.3km의 가파른 언덕을 7분 동안  단숨에 오른다.  

두 번째 교통수단인 전기 버스는 비조다이라에서 미다가하라를 거쳐 무로도까지 해발 차 1,473m, 거리 23Km를 50분 간 눈 덮인 지그재그 산길을 오른다. 무로도는 우리 숙소인 무로도 산장이 있다. 관광코스  하이라이트인 높이 16m 알펜루트 설벽이 있는 중간 목적지다. 무로도 터미널에서 숙소인 무로도 산장을 가려고 밖으로 나섰다. 화이트 아웃처럼 뿌옇게 흩날리는 눈보라가 길을 막아섰다. 어머니와 조카들이 걱정되었지만 다른 방안이 없었다. 그냥 뚫고 가는 수밖에.

보통 어른 걸음으로 터미널에서 목적지인 무로도 산장까지 10분이다. 어머니와 조카들을 생각해 20분 정도를 예상했었. 하얀 눈보라 속에서  얼마나 가야 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2,500m의 설산에서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숨이 가쁘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가 숨을 헐떡이며 털썩 주저앉으셨다. 순간 배낭을 땅바닥에 내친 다음 어머니를 그 위에 앉혔다. 조카들을 먼저 보냈다.  어머니가 배낭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동생이 손을 흔들며 부르는 소리가 눈보라 속에서 어렴풋이 들려왔다. 다 왔다고 조금만 힘내라고.

무로도 산장에 도착한 어머니와 조카들은 정신이 반쯤 나갔다. 다다미 방에 짐을 풀었다. 나도 잠시 쉬었다. 1시간 거리 라이초 산장에 있는 캠프장으로 길을 나섰다. 눈 길에는 눈보라 외에 아무도 없고 날이 어두워졌다. 마음은 조급했다. 두 개의 산장을 지나자 쾌쾌한 유황 온천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라이초 산장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미쿠리가이케 온천이 있다. 산장 투숙객이 아닌 외부인에게 온천 개방은 4시까지다. 아쉽게도 내가 산장에 도착한 시각은 5시가 넘었다.


5월 설국의 캠프장은 무료다. 개수대와 화장실 건물이 눈 속에 파묻히는 걸 보면 쌓인 눈의 깊이가 적어도 3m는 훌쩍 넘어보인다. 약 50여 동의 텐트가 저마다 자리를잡고 눈벽을 세우고 포옥 안겨 바람을 피한다. 일본 트레커는 새벽 일찍 짐을 꾸리고 오후 일찍 짐을 푼다. 3,000미터 산들이 즐비한 일본에서 해가 지기 전까진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으면 사고를 당할 위험이 높다. 옆 텐트에서 삽을 빌어 눈 벽을 세웠다. 텐트를 치고 따뜻한 침낭에 누웠다. 외로운 천국이다. 흐린 날씨 탓에 은하수 대신 깊고 푸른 밤을 맞았다

겨울 왕국같은 캠프장 전경.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온천도 이용할 수 있다.

다음날. 산 정상을 향해 가지 않았다. 혼자서는 무섭기도 했고 가족이 기다렸다. 사람들과는 반대로 길을 나섰다.  무로도 산장으로 되돌아오는 길은 파란 하늘과 하얀 눈이 어우러진 겨울 왕국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해발 2,500m에서의 숨은 여전히 가쁘다. 그래도 파란 날씨 덕에 느긋하게 셀프 사진도 찍고 설경도 실컷 봤다.

무로도 산장에서 터미널을 봤다.  코앞이다. 무로도 터미널에서 산장까지는 200m도 안됐다. 조카들은 미니 눈썰매를 타고 터미널까지 신나게 미끄러졌다. 높은 고도의 희박한 산소 탓에 어머니의 숨은 여전히 가빴다. 어머니가 터미널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조카들은 알펜루트의 상징 눈 벽에서 사람들과 섞여 사진을 찍었다.

무로도에서 다이칸보 까 전기로 움직이는 트롤리버스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해발 2,450m를 10분간 3.7Km 직하 터널을 통과한다. 배기가스가 나오지 않는다. 다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케이블카(여기서는 로프웨이라고 함)를 타고 7분간 1.7m를 파노라마 경치를 즐기며 내려온다. 고도차는 488m다. 내려오는 내내 로프웨이 창밖으로 비치는 설산의 모습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자연경관 보호와 눈사태 방지를 위해 지하로 달리는 일본 유일의 구로베 케이블카를 타고 5분간 0.8km를 내려온다. 여기서부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했다. 구로베 댐에 의해 생긴 호수는 수량을 조절하기 위해 수문을 여는 여름이 장관이라고 한다. 구로베 댐 위를 산책하듯 지났다. 마지막으로 간텐 터널 오와기사와 역까지 트롤리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소요시간 16분 이동거리 6.1Km다.
오와기사와 역에는 산 꼭대기 눈보라 대신 5월 햇볕이 렌터카와 함께 기다리고 다. 다 목적지인 다카야마에서 가까운 히라유 온천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다테야마 케이블카(좌), 고원버스(중),  트롤리버스 (우). 다테야마 로프웨이 좌), 구로베케이블카 중)  사진 출처-다테야마 알펜루트 공식 홈페이지
로프웨이 좌) 구로베 케이블카 중) 간데너널 버스. 출처- 상동


다테야마 숙박 정보

무로도 고원에는 다테야마 호텔, 무로도 산장 등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으나, 모두 비싸다. 일본의 산장들은 1인당 10만 원 정도로 저녁과 아침식사가 제공된다. 잠자리는 산장답게 10~20명 정도가 공동 객실을 이용한다. 무로도 산장의 경우 3인 이상이면 독실을 빌릴 수 있다. 개인적으로 무로도 산장보다는 온천욕이 가능한 라이초 산장을 추천한다. 비용과 시간이 된다면 당일보다는 꼭 하루 묵는 것이 좋다.
무로도 이외에 다이칸보, 미다가하라 등 다테야마내 많은 숙박 시설들이 있고, 20대부터 60대까지  많은 사람들이 스키장 대신 자연 산악 지대에서 스키를 탄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은 텐트를 이용하기도 한다. 일본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삐리리 오타쿠만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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