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예람 Oct 19. 2015

내가 너를 구해줄게

황희 - 월요일이 없는 소년

전화기 저편에서 여자의 음성과 함께 전파 방해음이 들려왔다.

아버지가 아니었다.

치직거리는 전파 방해음에 섞인 음성은 분명 여자의 것이었고 엄마의 목소리와 흡사했다.

소름이 끼쳤다.

엄마는 죽었다.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선 엄마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은새는 떨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어, 엄마?"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성과 마음 속의 성이 다른 소녀, 은새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스타일의 주인공이라서 더욱 관심이 갔다. 그런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은 으레 가족성장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소설은 조금 다르다.

남들과는 어딘가 다른 소녀, 은새가 죽은 엄마의 전화를 받으면서 원치 않는 타임리프에 휘말리고 그 과정에서 한 여자를 구하려고 애쓰는 미스터리 스릴러물에 가깝다. 주인공 특성상 성장소설의 요소가 빠질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두드러지지는 않아서 그런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도 부담감 없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님은 은혁이라는 이름이 아닌 은새라는 이름으로 주인공을 부르고 그가 아닌 그녀로, 소년이 아닌 소녀로 은새를 지칭한다. 처음에는 은새가 소년인지 소녀인지 헷갈렸으나 나중에는 '그녀'를 온전한 한 사람의 사랑스러운 소녀로 생각하게 되었다. 분명 작가님의 의도가 통했다고 본다. 적어도 나에게는.


죽은 어머니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타임리프에 휘말리는 소녀. 갑작스럽게 끼어든 불순물을 원치 않는 시간. 사람들 간의 관계와 그 사이의 변화. 계속되는 살인.

타임리프를 거듭할 수록 은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들의 반응이 변화하는 것을 느끼고 처음에는 자신을 걸러내려는 시간의 수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한 여자를 구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은새가 그걸 깨닫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했던 그녀가 변한다.


빠른 템포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읽는 내내 급박한 긴장감과 견딜 수 없는 스릴이 내 온 정신을 자극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이 작가님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아는데 그 말이,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등장하니까 동조해줘야 할지, 아니면 거부해야할지 망설여진다.

은근히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툭툭,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이 되니 그 말에 적극 동감하고 있던 사람도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서게 되는 격이다.


그것만 아니라면, 캐릭터도 정말 매력 있고 정신을 쏙 빼놓는 스릴에다가 간간히 들어있는 로맨틱한 분위기까지……. 오랜만에 제대로 소름 돋는 소설을 본 것 같은 만족감이 든다.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오전의 시간을 반복하는 것 때문에 월요일이 없는 소년이라는 제목이 붙었는데 그 때문에 굳이 일요일 밤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딱히 그러지는 않아도 됐을 듯싶다.

사실, 월요일이 오지 말았으면 하는 맹렬한 거부의 일환이었지만.

남자는 은새를 다시 흘낏 쳐다봤다.
남자가 곁눈질로 은새를 볼 때마다 은새는 손끝이 찌릿찌릿했다.
"공항 올 건 줄 알았음 같은 공항버스 타고 올걸 그랬어?"
"그러게요. 전 거기서 친구 차를 타고 왔어요. 공항버스를 타시길래 공항 분실물센터에 맡겨놓으려고 했는데 여기서 만났네요. 따님이신가 봐요?"
남자가 드디어 관심을 드러냈다.
"응. 내 딸. 예쁘지?"
남자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으로 배낭여행이라도 가는 것인지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메고,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흰색 와이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남자는 상대방을 무장 해제시키는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은새를 바라봤다.


작가의 이전글 외면된 진실, 그 안의 철저한 고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