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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람 Dec 18. 2021

무심한 펜 끝에서 마무리 된 그들의 이야기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트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베르팅크 중대장은 가슴에 총상을 입었다. 잠시 후 어떤 포탄 파편에 그의 턱이 으스러진다. 바로 그 포탄에 아직 남은 힘이 있던지 그것이 레어의 허리를 찢어 놓고 만다.

레어는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양팔로 몸을 지탱해 보지만 이내 피투성이가 된다. 아무도 그를 도와줄 수가 없다. 몇 분 후 그는 물 빠진 호스처럼 축 늘어져 버린다. 학교에서 그가 그토록 수학을 잘했다는 사실이 지금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여러 전쟁 소설이나 영화를 접하면서, 혹은 게임을 하면서 나는 전쟁이 참혹하다는 사실과 우리의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는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 전쟁이 끝난 후 으레 겪는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도.


그렇지만 담담한 어조로, 최대한 진실되게, 전쟁을 이야기하는 이 소설 앞에서 나는 참담한 기분을 느꼈다. 나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비참한 현실 앞에서 외면하고 싶으면서도 차마 그러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총칼을 들고 서로를 겨누며 싸워야 하는가.


분명 처음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 더 많은 시간이 지날 수록, 처음의 이유는 빛바래고 오직 상대방보다 하루라도 더 서 있기 위해 서로의 심장에 총을 겨누게 된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싸움도 전쟁도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화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만약 자의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던져진다면 더더욱.




소설의 주인공, 파울 보이머는 애국에 고무된 담임 선생님의 지휘 아래 학급 친구들과 함께 전입 신청을 하고 전장에 투입된다. 그리고 그들은 전장이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며 그 안에는 단지 삶과 죽음만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자라면 전쟁에 나가서 국가를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는 이들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전쟁은 나쁜 것이에요!를 외쳐대는 이들도, 정작 전쟁은 경험해 본 적도 없으면서 그저 앵무새처럼 말을 외는 것에 불과하다.


파울이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편안한 기분을 느끼지 못한 것도 더없이 슬프고 화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전쟁에 있어 보지 않은 이들에게서 공감도 무엇도 얻을 것이 없었을 테니까. 그곳에서 그를 맞은 건 공허와 쓸쓸함이었다.




전쟁이 정말로 참혹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옆에서 함께 달리던 전우가 내일 당장 죽을지 모르는데도 그가 소유한 군화를 탐내는 것에 있다. 자신의 친구를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파울에게 군의관이 여기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워낙 많기에 그 한 사람이 죽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차갑게 일갈하는 데 있다.

전우가 죽는 것이 슬프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살아남은 자들은 내일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먼저 간 이들보다 겨우 하루를 더 살아남기 위해.


소설은 이러한 모든 것들을 어떤 꾸밈말도 없이 담담하게, 진솔하게 풀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의 참상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고 그들이 겪는 아픔이 비교적 확실하게 와 닿는다.


얄궂게도 벰이 제일 먼저 전사한 동료들 중의 한 명이다. 그는 돌격하다가 눈에 총상을 입었다. 우리는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방치해 두었다. 우리는 허겁지겁 퇴각해야 했으므로 그를 데리고 올 수 없었다. 그런데 오후에 갑자기 그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그가 바깥에서 이리저리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는 잠깐 의식을 잃었을 뿐이었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았고 너무 아파 제정신이 아니어서 자신의 몸을 숨길 형편도 못 되었다. 누가 데려오기도 전에 그는 거너편 적에게 사살당하고 말았다.


파울과 동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라져 갈 때마다 마치 내 친구를 잃는 것과 같은 상실감을 느꼈다. 결국 카찬스키마저 그렇게 되었을 때 느낀 심정은 주인공 파울과 내 마음이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감히 생각한다.


살점이 뜯기고 이질과 이로 고생하고 팔다리가 날아가고 포탄 조각에 뇌가 터져나가고 지뢰로 사지가 분해되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해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전우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그래서 이 모든 것이, 그들이 겪어야 했던 이 모든 과정이, 그저 '이상이 없었다' 라는 한마디로 뭉뚱그려지자 허망함과 먹먹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들에게도 삶이 있었고, 어떤 서사가 있었다는 건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무심하고 다소 지루하게, '서부 전선 이상 없음' 단지 그게 끝이었다.


혼자 남은 파울이 마지막 순간에 그토록 편안해 보였던 것은 이런 세상을 남겨두고 자신이 진정 있어야 할 곳, 자신의 전우들에게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자신들에게 벌어진 일을 <서부 전선 이상 없음> 이라고 표현하는 이 세상이 아니라.

내가 사랑했던 주인공들을 떠나보내고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았다는 것이 무척 쓸쓸하고 외로웠다.



우리들 마음 속에는 강하게 억눌린 감정이 도사리고 있다. 누구나 이를 느끼고 있다. 이에는 여러 말이 필요 없다. 하마터면 우리가 변기 위에 앉아 있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까딱 잘못했으면 우리는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모든 게 새삼스럽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이 붉은 양귀비꽃과 훌륭한 식사, 담배와 여름 바람, 이런 것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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